[김홍배 기자]'화무는 십일홍'이라 했나 20일 영장실질 심사를 받으러 나온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50년 넘게 써온 금테 안경 대신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불과 사흘 전 만해도 김 전 실장은 소환조사 때만해도 금테 안경을 썼다.
법조계에서는 "법을 잘 아는 김 전 실장이 영장이 발부될 것을 염두에 두고 수감생활에 좀 더 편한 안경으로 바꾼 것 아니겠냐"는 추측도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법을 너무 잘 알아서 법꾸라지로 불리는 김 전 실장의 뿔테 선택은 적중했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몰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미 안 것이다.
이날 또 한명의 스타 장관이었던 조윤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장관 신분을 유지한 채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우면서 김 전 실장의 뒤를 따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일 현 정권에 비판적 성향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 지원을 끊을 목적으로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실행하도록 문화체육관광부에 지시한 혐의(형법상 직권남용) 등으로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체부 장관을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성창호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두 사람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증거인멸 우려’ 등의 사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특검 영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을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에 넣었다는 것이다.

▲ 연합뉴스TV 캡쳐
최종 종착지가 '박근혜' 임을 분명히 명시한 것이다.

앞서 특검은 청와대와 문체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 대통령이 2014년 5월 처음으로 '좌파(左派)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 예산이 지원되지 않게 관리하라'는 지시를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내린 것으로 파악해 이를 김 전 실장의 구속영장에 포함시켰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이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당시 신동철(56·구속) 정무수석실 국민소통비서관에게 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했다. 블랙리스트 문제의 출발은 결국 박 대통령이라는 것이 특검팀의 시각이다.

특검팀은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 등이 직권을 남용해 문체부가 문화·예술인들에게 지원을 끊도록 한 혐의(형법상 직권남용)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윤선 장관의 경우 리스트를 처음 만들 때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그가 2014년 6월 정무수석으로 취임한 뒤 리스트 명단이 수천 명으로 확대됐다고 특검은 보고 있다.

결국 특검은 블랙리스트 문제의 출발은 결국 박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한편 법조계에선 박 대통령의 '뇌물 혐의'보다 블랙리스트 개입 관련 수사 결과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실제 개입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헌법상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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