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일보 대기자 겸 편집국장
83년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신문사 기자생활, 당시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라 지금의 보수, 진보 대립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다. 굳이 말하자면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이 있었을 뿐이다.

조금 시계를 뒤로 돌려 보면 박정희 통치시대가 내겐 보수였고 김대중-김영삼이 진보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아버지 세대, 즉 경제개발 1세대에서 내가 속한 2세대로 오면서 삶이 풍족해졌다는 것이다. 그래, 이런 박정희 시대를 거부하는 이들은 빨갱이라 말하면 믿었고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김대중은 빨갱이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하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저항한 것은 솔직히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민주와 반민주의 싸움이었다.

결국 6.29 선언을 거쳐 민주의 기회가 왔지만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의 대결에서 노태우가 당선된 것은 많은 국민들이 당시도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경제발전을 잊지 못하고 비록 군부출신이지만 노태우를 선택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보수라 칭하는 대부분의 경제개발 2세대는 이 부류가 아닐까 싶다.

포니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고 한강다리가 새로이 놓이고 흑백TV가 칼라로 바뀌는 그 때를 잊지 못한 것이다. 검은 선그라스에 5.16 군사쿠테타를 일으켰던 박정희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과 겹쳐지면서 어느새 보수에겐 작은 거인'이자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시작됐다고 하면 맞다. 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면서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가열됐고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그리고 4년 전, 박근혜가 대톨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박근혜에게 표를 준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게 표를 준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국민들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 외에 그가 부친 시해 이후 18년 칩거 생활 동안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철저히 언론의 관심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40년, 그는 철저히 고립돼 있었고 세상과의 연결고리는 최태민-최순실 외에는 없었다.

어쨌건 그는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처럼 아버지의 후광으로 보수의 향수에 힘입어 마침내 청와대로 복귀했고 이 나라의 안주인이 됐다.

취임 초기, 간혹 후배 청와대 출입기자를 통해 민간인이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사실이었고 그 여자가 최순실이었고 이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이들 두사람은 모든 청와대 공식라인을 무시했고 수석들을 일개 심부름꾼으로 만들었으며 대통령은 이 나라의 꿈들이 수장되고 있을 때  머리를 하고 미용시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탄핵심판대 앞에 섰다.

박 대통령은 최후진술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펼친 많은 정책이 수많은 오해와 의혹에 휩싸여 모두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밝혔다. 최순실과의 관련해서도 “최씨에게 국가기밀 문건을 전달한 적이 없고 최가 국정농단을 하도록 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최순실은 40년간 옷가지와 생필품 등을 도와준 사람일 뿐이고 그에 대한 믿음을 경계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거짓말에 분노한 국민들을 향해 자신은 엮였다고 코스프레하고 있다..  이 나라를 편갈라 놓고 자신의 아버지가 이룩한 경제를 파탄시키고 국정을 농락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감옥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자신을 속인 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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