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로 199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 배용제. 그의 시 앞 구절에 이런 글귀가 있다

나는 날마다 꿈을 꾼다

의식의 미세한 입자들이 신비로운 곳을 향해 날아간다

환상 속 연인과 동침을 하며 춤을 춘다

그는 "시 세계를 넓히려면 성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며 ‘환상 속 연인’이 아닌 자신이 가르치던 여고생 제자들을 수년간 성폭행을 일삼았다.

15일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15일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등 혐의로 기소된 배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배씨는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모 고등학교에서 시 창작 과목 전공의 실기 교사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 5명을 성추행하고 성폭행 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2011년 학교 복도에서 여학생에게 속옷이 보인다고 말하는 등 2013년까지 17회에 걸쳐 성희롱 등 성적 학대행위를 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도 있다.

검찰 조사결과 배씨는 자신의 창작실에서 학생들에게 "너의 가장 예쁜 시절을 갖고 싶다", "시 세계를 넓히려면 성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등 강제로 몸을 더듬으며 추행하고, 성폭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씨는 평소 학생들에게 "사람 하나 등단을 시키거나 문단 내에서 매장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고 하는 등 입시와 문학계 등단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등단이나 대학 입시 등을 목표로 해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학생들의 취약한 심리 상태와 배씨의 요구를 거스르기 어려운 처지를 악용했다"며 "감수성이 예민한 미성년의 여성들을 자신의 왜곡된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객체로 전락시켰고 피해자들은 커다란 정신적 고통과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2심도 "배씨는 학생들을 상대로 성폭행과 성추행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생들의 법정 진술은 충분히 세부적이고 구체적이며 객관적인 다른 사정들과도 일치한다"며 "범행 내용에 대해 향후 깊이 생각하고 많은 반성을 하라"며 1심과 같은 형량을 선고했다.

배씨의 범행은 지난 2016년 10월 문단 내 성추문 폭로가 이어지면서 불거졌다. 배씨에게 문학 강습을 받았다는 학생 6명은 SNS을 통해 '습작생 1~6'이라는 아이디로 성폭력 사실을 폭로했다. 논란이 커지자 배씨는 블로그를 통해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후 조사 과정과 재판에서 줄곧 혐의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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