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화이트리스트' 관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민호 기자]지난 16일 JTBC<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목소리에는 분노의 기운이 역력했다. "어처구니없는 일" "시민사회에 국가란 대체 무엇인가... 라는 멘트로 '김기춘 굴욕외교를 말했다

'왕실장' 김기춘, 그는 '단돈 100억원을 받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고 강재징용 손해배상 판결까지 지연시키는 그 중심에 있었고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 신문 가또 다쓰아 전 서울 지국장 명예회손 재판에도 관여하는등 박근혜 정부의 대일외교 설계자였다.

가토 전 지국장은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려의 '세월호 7시간'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요약하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에 '비선'정윤회씨를 만났고, 정씨와 그의 장인이던 고 최태민 목사가 박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보스단체 등의 고발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그해 10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여성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남녀관계가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적시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의 기소를 두고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논란이 국내외에서 불거졌다.

1년여 뒤인 2015년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허위사실을 적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적 존재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언론의 자유를 우위에 둔다는 점을 적용했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의 명예가 걸린 중대한 사건을 법원이 이상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이례적으로 항소하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가 '죄는 있지만, 언론자유가 우선한다'는 논리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게끔하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것으로 조율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시절 법원이 각종 정치적 사안을 가지고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데, 이 문제 역시 김기춘이 개입했다는 말이 법원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시 이 사안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취안부 합의 문제와 맞물려 매우 민감햇던 것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직접 이 문제를 챙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시 박근혜 정부는 10억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 협상을 타결하려는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 매체에 따르면 김기춘 전 실장은 이를 위해 자신의 친구를 주일대사로 보내는 무리수까지 뒀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자 오랜 친구 사이로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는 유흥수 새누리당 고문을 주일대사로 임명했는데, 그는 당시 이미 77세의 고령으로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한반도 주변 4개국 대사에 임명하는 것은 드문 일이라는 것이다.

매체는 "일본 언론들 역시 유 대사의 일본 대사 임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직업외교관으로는 풀기 힘든 한. 일 문제를 청와대와 가까운 정치인 출신이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라고 전했다.

최근 드러난 문건을 보면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추진하고 있던 위안부 문제 합의 등을 고려해 강제징용 재판을 뒤로 늦추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 수사 결과로 드러난 이날 회동의 전말은 이렇다. 2013년 12월, 강제징용 피해자 총 9명이 일본 전범 기업 두 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낸 사건과 관련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던 2014년 10월 어느 일요일 오전, 김기춘 비서실장의 요청으로 당시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 대법관이 청와대 공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엔 차한성 대법관을 비롯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병세 외교장관, 황교안 법무장관이 자리했고, 이들은 청와대와 외교부가 미리 준비한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물으면 한일 관계가 악화된다'는 요구를 차한성 대법관에 전달했다. 이런 회의가 수차례 이뤄졌다고 한다. 이 건은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올라갔고, 아직까지 대법원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이 반영, 실행된 셈이다.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재판 결과가 나올 경우 협상이 틀어지거나 국민들이 반발하는 등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2차 회동이 이뤄진 뒤 1년 뒤인 2015년 12월에 위안부 합의 타결을 발표했다. 또 당시 대법원전원합의체어서 강제징용 재판 결과가 뒤집혀 나올 경우 예상되는 피해자와 국민들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대책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김 전 실장이 법원에 압력을 넣은 타이밍이다. 2014년 10월이면 유 대사가 일본 대사로 간 직후였다. 즉 김 전 실장이 유 전 대사와 긴밀하게 협의하는 가운데 국내 문제들을 조율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박근혜 정권, 국가가 사법거래를, 반국가적인 재판 뒤집기와 사법농단을 획책했던 사건의 중심에 김기춘 전 실장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의 의중을 모아 회의를 주재한 것도, 이를 보고한 것도 바로 이 '왕실장'이었다.

최근 검찰에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대법원과 이야기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행정부와 사법부의 지극히 부적절한 회동의 책임을 전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듯한 진술을 했다.

그는 2016년 12월 7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자식이 먼저 숨졌습니다. 세월호 인양을 반대할 리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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