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사진 SNS갈무리
나는 내 자신을 가만히 관조하며 내가 가야 할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거침없이 달려간다. 그러나 내가 그 거룩한 여정으로 떠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것이 있다. 내가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나에게 겹겹이 달라붙는다. 이 괴물의 이름은 오만(傲慢)이다. 오만은 자신에게 유일한 최선의 삶을 구가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기원전 16세기, 그리스 남동쪽 에게해의 섬 테라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화산 폭발이 발생했다. 수백m 화산재가 쌓이고 해일이 발생해 미노스 섬과 미케네 섬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명이 자취를 감췄다. 이때 생긴 섬이 휴양지로 유명한 산토리니다.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는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생산해 정교한 해상무역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대규모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상권이 무너지면서 그리스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 서서히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문명인 철기문화와 기마문화로 무장해 팔레스타인을 장악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들을 ‘펠레세트’라고 불렀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어원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용어는 구약성서에 ‘블레셋’으로 번역됐다. 블레셋은 기원전 13세기 터키 지역의 히타이트 문명, 시리아 지역의 우가리트 문명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오늘날 이스라엘 해변에 다섯 도시를 구축해 거주했다. 이 혼란을 틈타 등장한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있다. 다윗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우울증을 악기 연주로 덜어주던 악사로 시작했다. 그는 동시에 용감한 용병이었다. 당시 블레셋엔 무시무시한 장군이 있었다. 거인 장군 골리앗이다. 다윗은 골리앗과 일대일 대결에서 승리하며 일약 스타가 되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다윗은 왕이 된 후, 블레셋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12지파로 나뉘었던 이스라엘인들을 하나로 묶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그는 12지파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미지의 땅인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해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일개 용병으로 시작해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에게 어김없이 찾아온 괴물이 있다. 바로 오만이다. 이 오만은 그를 게으르게 만들었다.

오만은 비극적 인간의 첫 단추다. 자신이 누리는 현재의 혜택이나 특권을 스스로 성취했다고 착각하는 마음이다. 그리스어로는 ‘휴브리스(hubris)’다. 휴브리스는 자신의 초심을 잃고 난 뒤, 반드시 따라오는 극도의 자만심이자 과도한 확신이다. 사람이 휴브리스라는 병에 걸리면, 곧 장님이 된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직시해야 할 현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그리스어로 ‘아테’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장님성’이다. 자신 앞에 다가온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병이다.

다윗은 이제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다. 야전사령관으로 잔뼈가 굵은 다윗이 자신이 할 일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부하 요압에게 전권을 맡긴다. 요압은 다윗을 대신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는 암몬과 모압과 전쟁을 치른다. 이 위임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윗은 깨닫지 못한다. 그는 예루살렘 궁전에서 지중해의 쾌적한 날씨를 홀로 빈둥빈둥 즐기고 있었다.

혁신가는 자신이 있어야 할 시간과 장소를 헤아려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이 모압의 수도 랍바를 포위하면서 사선에 처해 있는데도, 예루살렘 궁전 위에서 목욕하고 있는 한 아름다운 여인을 염탐하는 졸장부로 전락한다. 그녀는 자신의 부하 군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다. 다윗은 밧세바를 궁궐로 데려와 향락의 시간을 가진 후, 임신시킨다. 다윗은 우리야를 최전선에 배치해 전사하게 만든다. 다윗은 스스로를 비극으로 몰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

다윗을 지켜본 예언자 나단은 다윗에게 비유로 말한다. “한 동네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겐 딸처럼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오자, 부자는 가난한 자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 도축해 대접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분개하여 말했다. “그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 그러자 나단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 부자입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왕이 되었지만,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망각해 오만한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 후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죽이려고 반란을 일으키고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들은 죽고 만다. 오만에 빠져 장님이 되고 나면 찾아오는 불행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 불행을 ‘네메시스(nemesis)’라고 부른다. ‘네메시스’란 흔히 복수라고 번역하는데, 그 근본적인 의미는 ‘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그 어떤 것을 받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누리는 이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미 오만-장님성-불행이라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에 이미 걸려든 것이다. 내가 오만에 빠지지 않도록 근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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