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노무현재단 신임 이사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장 이·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홍배 기자]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무현재단이 운영하는 ‘사람사는세상’ 홈페이지에 ‘노무현 대통령을 비방하는 행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라는 16일 장문의 글을 올렸다.

유 이사장은  “표현의 자유란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과 업적을 비판하고 부정할 자유를 포함한다는 것을 깊게 인식한다”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방하는 행위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전적으로 존중한다"고 정리했다.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보수논객을 중심으로 퍼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글, 이미지 등에 대한 대응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어 유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해 거짓이나 부정확한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조처하겠다”며 “불합리하거나 잘못된 견해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견해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조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명백히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할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에는 단호하게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유 이사장은 밝혔다.

다음은 유시민 이사장 글 전문이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사장 유시민입니다. 재단 업무와 관련하여 회원 여러분의 견해를 듣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유명인사와 정치인을 포함하여 많은 이들이 허위사실이나 조작한 이미지, 사실을 자의적으로 왜곡 해석한 견해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유포함으로써 노무현 대통령님을 비방해 왔고, 회원 여러분과 뜻있는 시민들은 그때마다 재단에 관련 사실을 제보하고 적극 대처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2018년 1월부터 10월까지 재단은 메일로 180여 건, 홈페이지 Q&A로 100여 건, 페이스북으로 50여 건 등 모두 330여 건의 제보를 접수하였습니다. 유선전화로 들어온 제보와 대응 요구도 많았고, 재단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후원 중단을 통보하거나 후원금 환불을 요청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지난 7월부터 9월까지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관련한 문제로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전화를 받았고, 10월 하순에는 평론가 이동형 씨의 발언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그 동안 재단은 2014년에 이사회의 논의를 토대로 수립한 방침에 따라 대처해 왔습니다. 제보를 받거나 자체 인지한 사건의 중대성을 살펴 필요한 때는 사실관계를 밝히는 논평을 냈으며,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과 상의하여 법적 조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이해찬 이사장과 문재인 이사를 비롯한 재단의 이사진이 법률가들의 자문을 받아 세운 2014년의 방침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이 방침을 밖으로 공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는 분이 별로 없을 겁니다.

①사회적으로 인지도와 영향력이 있는 단체의 대표, 정치인, 교수 등의 대통령님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는 엄중 대응한다. ②언론에 대통령님을 모욕하는 이미지와 정보를 유포하는 경우에는 직접 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해 사과를 받아내고 ‘경고’ 조치 등의 조처를 취하게 한다. ③온라인에서 대통령님을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사진과 정보를 게재 유포하거나 SNS 계정으로 유사한 행위를 하는 네티즌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되 포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쉽게 노출되는 경우는 사이트 계정 담당자에게 삭제를 요청한다.

김경재 자유총연맹 총재, 최우원 부산대 교수, 정진석 의원 등을 ‘사자명예훼손죄’로 유족 명의 고소를 한 것은 방침①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가 그밖에도 많았지만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하려면 유족이 소송 주체로 직접 나서야만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은 공인이셨고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시하셨다는 점을 고려하여 법적 조처를 최소화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방침②에 따라 조처한 사례와 결과는 그때마다 여러분께 전해드렸습니다. 포털 게시판이나 개인 SNS계정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제보를 접수했지만 방침③에 따라 작성자나 유포자에 대해서 특별한 조처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서신을 드리는 것은 지난 해 이후 재단에 들어오는 제보의 성격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고, 제보하신 회원들 가운데 기존의 방침에 따른 재단의 조처에 불만을 표시하는 분이 많아졌다는 사정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 최승호 PD의 제4회 ‘사람사는세상 영화제’ 수상, 2018년 초 지역위원회의 이재명 지사 초청강연, 뉴욕 타임스퀘어 비방광고 사건, 지난 10월 이동형 평론가의 ‘박스떼기’ 발언 등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회원들이 노무현 대통령님의 명예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다고 재단을 비판하셨고, 특정한 인사의 언행을 이유로 들어 재단 행사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앞으로 또 생기겠지만 이런 상황은 위에서 말씀드린 기존의 방침으로는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비판 또는 비방에 대응하는 재단의 방침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우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응답과 비판, 제안을 받아 재단의 대응 방침을 보완하기 위해서입니다.

노무현재단의 설립 목적은 “노무현 대통령님의 가치와 철학과 업적을 선양하고 유지 계승 발전시켜 그 뜻이 나라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정관 제2조) 대통령님을 추모하거나 명예를 보호하는 것은 재단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지만 재단의 활동 목표가 여기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인간 노무현을 싫어하거나 정치인 노무현의 가치와 철학에 반대하거나 대통령 노무현의 업적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재단은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런 사람들과 싸우는 것을 넘어, 그분이 추구했던 가치와 철학과 정책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 목표에 다가서려면 재단이 법의 원리보다는 민주주의 정신에 발을 디뎌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2014년 세운 재단의 방침은 민주주의 정신에 의거해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2018년 현재 재단이 처한 환경과 재단이 요구받는 과제는 2014년과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재단이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갖추고 있어야 할 기본방침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첫째, 국민의 정치의식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수정부 9년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보는 눈이 깊어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많은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권리를 누리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체득했습니다. 우리 재단은 과거보다 더 철저하게 표현의 자유와 상이한 견해의 공존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둘째,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신의 대통령 자격을 증명하는 지표로 삼았던 친구(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재단은 처음에는 후임자의 박해에 쫓긴 끝에 세상을 떠나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모임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현직 대통령과 깊은 관계가 있는 단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 재단도 한없이 자신을 낮추며 활동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셋째, 노무현 대통령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전임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인간, 정치인,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를 종합해서 보여주는 조사결과일 것입니다. 생시의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강물’이었지만, 서거 10주기를 앞둔 지금은 ‘어떤 강물도 마다 않는 바다’가 되셨습니다. 우리 재단도 바다처럼 품이 넓은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변화를 반영하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방이나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는 행위에 대응하는 재단의 방침을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2014년의 방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방침도 민주주의 원리를 따른 것이었던 만큼 몇 년 사이에 본질이 바뀔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①재단은 헌법이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전적으로 존중한다. 여기에서 표현의 자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가치와 철학과 업적을 비판하고 부정할 자유를 포함한다는 것을 우리는 깊게 인식한다.(이것은 2014년 방침③의 “온라인에서 대통령님을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사진과 정보를 게재 유포하거나 SNS 계정으로 유사한 행위를 하는 네티즌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되”라는 조항의 취지를 더 명확하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②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하여 거짓이나 부정확한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조처한다.

③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하여 불합리하거나 잘못된 견해를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견해를 제출하는 방법으로 조처한다.(②와 ③에 따라 재단은 필요한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한 사료를 제시하고 논평을 발표하게 될 것입니다.)

④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노무현 대통령을 모욕할 목적으로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비방 모욕하는 행위는 그 폐해가 중대하고 다른 대처방법이 없는 경우 단호한 법적 조처를 한다.(이 문장은 2014년 방침의 ①②와 ③의 뒷부분 “포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온라인 공간에 쉽게 노출되는 경우는 사이트 계정 담당자에게 삭제를 요청한다”는 내용을 모두 포함해 정리한 것입니다.)

그 동안 노무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한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의 제보, 권고, 항의, 요구에 대해서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소나기처럼 쏟아진 전화 제보와 항의, 재단의 대표 메일 계정과 홈페이지 게시판, 페이스북을 통해 쉼 없이 들어온 요구는 때로 재단이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더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회원 여러분의 너그러운 용서를 청합니다.

제가 네 가지로 정리해 제안한 방침은 재단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하나의 토론 자료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비평과 제안을 해주시면 잘 살피고 반영해서 이사회에서 논의할 초안을 만들고, 이사회 논의를 거쳐 확정하면 홈페이지에 공지하겠습니다. 기본방침에 따른 매뉴얼을 지속적으로 쌓아감으로써 노무현 대통령과 재단에 대한 비판, 비난, 비방 행위에 대해 재단의 임직원들이 적절한 조처를 최대한 신속하게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신의 취지는 다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만, 기왕 쓰는 김에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우리 회원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워하지만 모든 면에서 다 같지는 않습니다. 지지하는 정당과 좋아하는 정치인이 다를 수 있으며, 국가의 정책에 대한 견해도 많든 적든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차이를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론의 영역에서 토론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하나가 옳다고 전제 위에서 그에 따른 조처를 재단에 요구하는 일은 거두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과 같은 통합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셨습니다. 링컨 대통령도 생시에는 정파의 지도자로 인식되었고 쉼 없이 다른 정파의 공격을 받은 끝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긴 역사의 시간을 거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삼아 미합중국의 통합을 이끌어낸 지도자로 시민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살아계신 동안 가혹한 정파적 공격에 고통을 받으셨고 지금도 그런 공격은 계속되고 있지만, 역사의 시간 안에서 민주주의와 국민통합, 한반도 평화, 사회정의가 이 땅에 꽃피도록 밭을 갈고 씨를 뿌린 지도자로 당신에게 합당한 자리를 얻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말씀을 기다리며

2018년 11월 16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 드림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