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논객 지만원씨를 비롯한 보수단체가 지난해 5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대북 20억 송금'을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검찰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민호 기자] "광주인들은 어째서 광주의 피해가 반드시 계엄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야 좋아하고 북한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면 사납게 공격하는 것인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 씨가 18일 또다시 '망언’을 되풀이하며, 한발 더 나갔다. 이날 지 씨는 '500만 야전군' 등 보수단체와 서울 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들은 지만원이 5·18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논리와 팩트를 무시한 근거 없는 신앙"이라며 무고로 맞고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지 씨의 '5·18 망언‘ 논란이 정국을 강타하면서 극우 논객 지만원 씨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만원 씨는 육사를 졸업하고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군사평론가로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배후조종한 폭동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무위키에 실린 그의 행적은 “육군사관학교 22기로, 졸업 이후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인헌무공훈장을 받았다. 1970년대 말 미국에 유학하여 미 해군대학원에서 행정과학 석사,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때부터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대 혁신을 연구했다고 한다.”고 적혀있다.

이어 “대령 예편 이후 군사 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0년대까지는 군대 시절의 경험을 살려서 '정치군인의 청산'과 과감한 군 혁신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특히 1991년 <70만 경영체 한국군 어디로 가야 하나>, 1992년 <군축시대의 한국군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등의 저서를 펴내면서 군 내부에 팽배해있던 비효율과 조직 비대화 현상을 지적하고, 시스템 경영에 따른 군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오랜 군사 독재 기간을 거치면서 비록 군 출신일지라도 민간인 군사전문가는 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많이 주목하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온건 보수 성향을 보이면서도 자신과 정반대 성향의 위치한 월간지 말과도 인터뷰하고, 지금 지만원과 비교해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겨레신문에도 거리낌 없이 칼럼을 기고하였다. 심지어 칼럼에서 평화 협상과 유엔 통제에 의한 남북 평화 군축이나 북한 체제 보장과 종전 선언을 주창하는 등, 현재 시점으로 봐도 대체적으로 상당히 온건하거나, 일견 진보적인 대북-안보 노선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김대중이 1994년 아시아 태평양 평화 재단을 창립하자 한동안 대외 활동을 수행했다. 정계 은퇴 이후 김대중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보수의 대표 인물 마가렛 대처를 집중 연구하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온건보수 성향의 군인, 관료, 기업인들을 대거 영입하였다. 이때 합류한 인물이 군인 출신의 임동원, 천용택, 안기부 기획 조정 실장 경력의 엄삼탁, 쌍용그룹 전무 이사 정세균 등이며 지만원도 이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특히 공개 활동에는 이때 영입한 보수파 인사들을 자신의 좌우에 세워서 카메라에 함께 잡히도록 하는 이미지메이킹 전략을 사용했다. 어쨌든 나름대로 열심히 했음에도 96년 총선에 중용되지 못하고[4], 얼마 안 가 김대중의 곁을 떠났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한 때 촉망받던 군사 전문가이던 지 씨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 일정을 수행까지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 전 대통령을 '빨갱이'라 부르며 감정 섞인 색깔론을 덧씌운 이유는 무엇인가

▲ 지만원씨가 1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5.18 북한군 개입 대국민 공청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1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지 씨와 김 전 대통령 측에 따르면 지 씨와 김 전 대통령의 인연은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김 전 대통령은 정계 복귀를 준비하면서 군인과 관료, 기업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인재를 대거 영입하는데 이중 군사 분야 인재풀 중 한 명이 지 씨였다.

지 씨는 동교동계 좌장이자 당시 인재영입을 주도했던 권노갑 민주평화당 상임고문이 접촉해 군사와 대북 분야에 대한 자문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 씨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영구분단 통일론'에 대해 높이 평가해 자신을 매우 아꼈으며 해외 일정에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지씨는 1995년 김 전 대통령의 베이징 일정에 동행하는 등 해외 수행을 함께 했는데,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베이징 행 여객기 퍼스트클래스에서 이희호 여사 대신 옆자리에 앉도록 했고 이후 베이징 일정에서도 늘 옆에서 말동무를 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동교동계로 분류되는 김상현 전 의원으로부터 장관과 한국전력 사장직을 제안 받았지만 공직에 얽매이는 것이 싫어 거절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1997년만 해도 김 전 대통령의 대북관과 통일관에 대해 "균형 있는 구도를 갖췄다"고 평가했던 지 씨였지만 2000년부터는 각종 언론과 강연을 통해 "DJ는 빨갱이다"와 같은 표현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갑자기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씨는 1998년 김 전 대통령의 안보수석을 지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햇볕정책을 주장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임 전 장관이 빨갱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이후부터 두 사람을 김정일의 앞잡이로 규정한 글을 잡지와 인터넷에 쓰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 측근들의 증언은 이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우선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이 지 씨를 큰 인물로 보고 곁에 두려고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권 고문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임동원, 천용택, 정세균 등 인재 영입은 내가 맡았지만 지 씨는 단순히 자문을 하는 역할만 맡았었다"며 "김 전 대통령이 독대를 해 의견을 구하거나, 특정한 자리를 주려고 했었다면 내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용택 전 국방장관도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후 조각 과정에 참여했지만 지 씨의 이름은 전혀 거론된 적이 없다"며 "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군사 분야의 젊은 학자'로 접촉은 했지만 오히려 활동이 여러 가지로 비정상적인 부분이 있어 오히려 '조심해야 할 인재'라는 중간 평가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지 씨와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한 확대해석을 우려했다.

이들은 지 씨가 김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반대 세력으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서도 지 씨와 다른 해석을 내놨다.

김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지 씨가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니 청와대로 '연구비를 좀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보냈었다"며 지 씨의 변심 이유를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지 씨를 "전형적인 권력 옆에 붙어보려는 부나방 같은 인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지 씨가 17대 대선에 출마했을 정도로 권력욕이 있었지만 김 전 대통령 측에서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주거나 입각시킬 정도의 인물이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서로 뜻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적으로 돌아섰다는 분석 또한 제기됐다.

한 김 전 대통령 측 인사는 "김 전 대통령은 공천 등과 관련해서는 지 씨에 대해 일체 얘기가 없었다"며 "출마를 한다면 (지씨의 고향인) 강원도 지역 등을 공천 지역으로 고려했겠지만 전혀 논의된 바 없고 그런 급의 인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