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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12시간] "이거 왜 이래"

기사승인 2019.03.11  18: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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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기자] 전두환(88) 전 대통령는 11일 오전 8시 32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출발해 낮 12시 34분 광주지법 법정동에 도착했다. 흑색 정장에 연한 노란색 넥타이 차림으로 자택 정문을 나온 전씨는 아무 말 없이 바로 에쿠스 승용차에 탑승했다.

전씨는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 걸어나와 승용차에 올랐다.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지만 거동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에쿠스 승용차 뒤는 경호요원과 형사들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와 승합차가 뒤따랐다.

12시 34분, 전씨는 승용차에서 내려 경호원의 부축을 받지 않고 스스로 걸어서 법정동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 39년 만에 광주 법정에 선 것. 내란죄 등의 혐의로 1996년 형사 법정에 선지는 23년 만이다.

전씨는 차에서 내려 현장에 있는 취재진과 시민들을 한차례 둘러본 뒤 조금 비틀거리며 느릿한 걸음으로 이동했다. 신뢰관계인으로 동행한 부인 이순자 여사도 전씨 바로 뒤에서 따랐다. 전씨는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호원의 제지를 받던 다른 취재진이 손을 뻗어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이거 왜 이래"라고 말하고는 법정에 들어갔다.

전 씨는 재판 시작 1분 전 부인 이 씨와 함께 재판장에 들어섰다.

광주지법 형사8단독(부장판사 장동혁)은 이날 오후 2시30분 법정동 201호 대법정에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 씨에 대한 심리를 열었다.

재판장은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방청객들에게 협조를 당부했다. 전 씨는 두 눈을 감고 재판장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어 재판장은 전 씨에게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인정신문에 나섰다.이 과정에 전 씨는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미리 준비한 '헤드셋'(청각보조장치)을 전 씨에게 건넸다.

법원 직원 등의 도움으로 헤드셋을 착용한 전 씨는 재판장이 다시한번 진술거부권을 고지하고 연령과 주소를 확인하자 그제서야 "예. 맞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검사의 모두진술에 앞서 전 씨는 착용한 헤드셋을 벗었다. 법정에 검사는 모두 4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전 씨 사건을 수사한 전·현 광주지검 소속 검사들이다. 

검사들은 미리 준비한 화면 자료를 이용해 전 씨의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이 과정에 전 씨는 부인 이 씨와 자리를 바꿔 앉기도 했다. 피고인석 모니터 화면이 이 씨 앞에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 씨는 화면 속 자신의 공소사실과 검사를 번갈아 보며 눈을 감기도 했다.

검사의 공소사실 낭독에 이어 피고인 모두진술 절차에 이르자 전 씨의 변호인은 일어서 발언을 이어갔다. 

변호인은 먼저 재판 관할지 위반 설명에 집중했다. 광주에서의 재판이 위법하다는 그동안의 주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오랜시간 변호인의 진술이 이어지자 전 씨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왼쪽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 사이 전 씨의 변호인은 몇가지 근거를 들며 전 씨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결론은 검찰의 공소장 내용이 사자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 측의 의견을 청취한 재판장은 증거 정리를 위해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진행하기로 했다. 오는 4월8일 오후 2시 관련 재판을 열기로 했다.

재판이 끝날 무렵 부인 이 씨는 검사와 대화를 나누다 편지봉투 하나를 재판장에 전달했다. 

재판장은 이 편지가 "재판부에 당부하는 사항, 재판에 임하는 느낌 등을 적은 글로 이해하겠다"며 오후 3시45분께 재판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전 씨의 차량 행렬이 법원 밖으로 나오면서 일대는 10여분 간 혼란을 빚었다.  

오월 단체 회원 등은 전 씨 차량 앞을 가로막아서며 '책임을 인정하라. 사과하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전 씨가 탄 차량은 경찰의 보호 속에서 항의하는 시민 사이를 빠져나갔다.

앞서 재판이 끝난 뒤 대기중인 차량에 오르려던 전 씨 부부는 모여든 오월단체 회원과 시민에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재판 전후에도 광주지법 안팎에서 거센 항의가 이어졌지만, 전 씨의 사과는 없었다.

조진태 5·18 재단 상임이사는 "전 씨가 재판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역사의 피해자 앞에서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전 씨는 2017년 4월에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 고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조 신부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같은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오월 단체와 유가족은 2017년 4월 전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며, 검찰은 수사 끝에 전 씨를 불구속기소했다.  

김민호 기자 sisaplusnews999@daum.net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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