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두언 전 의원
[김민호 기자]정 전 의원은 종이 한 장에 자필로 ‘가족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 장례는 크게 치르지 마라. 조용하게 치러달라. 어머니 옆에 화장해서 묻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내에게는 ‘여보 사랑해’라고 유서에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경찰은 "가족에 미안하다는 취지의 유서가 자택에서 발견됐다"며 "유족 뜻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어 "폐쇄회로(CC)TV 확인, 현장감식 및 검시 결과, 유족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재까지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정 전 의원은 이날 오후 2시 반경 북한산 자락길에서 자신의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려 산 쪽으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3시 42분경 정 전 의원의 부인은 그가 남긴 유서를 자택에서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 전 의원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고 드론과 구조견을 투입해 정 전 의원을 발견했다. 발견했을 때 정 전 의원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2015년 그는 자신에 대해 "권력에서 스스로 밀려난 사람"이라면서 "대통령의 형에 대해서 그렇게 제지하고 나서는데 칭찬받을 일은 별로 없겠다. 그래서 그게 내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쓴 소리를 했다.

지난 2010년 영포라인의 국정개입 논란이 절정에 치닫던 당시 정 전 의원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권력 투쟁 설에 대해 "나를 권력투쟁 당사자로 모는 것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아니다"라며 "청와대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 대통령이 조사하라고 했고 정리, 처벌 수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기자회견 도중 감정이 격해진 그는 "내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는지 아느냐"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는 한때나마 ‘왕의 남자’였다.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2000년 총선부터 정치권의 문을 두드린 그는 이상득 이재오 전 의원과 함께 2008년 이명박(MB)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정 전 의원은 2008년 MB 정부 출범 직후 이상득 전 의원과 정권의 2인자 자리를 놓고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밀려 정부 조각 작업에서 막판 배제되기도 했다. 결국 같은 해 4월 치러진 18대 총선을 앞두고 이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서명 파동을 일으켰고 자신이 만든 권력의 정점에서 급속히 멀어져갔다.

18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MB 저격수’를 자처한 그는 저축은행 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에 휘말려 검찰 수사를 받았고, 2013년 1월부터 10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는 2014년 11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정치적 재기를 노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 낙선 후 우울증이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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