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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리포트】 한·일 격돌 설명서 ...校歌에 대하여

기사승인 2019.08.23  1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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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교가 연습하는 학생들
정부가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을 종료하기로 했다. 일본이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을 무역보복으로 대응한 상황에서 더는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우리를 사실상의 ‘안보적성국’으로 간주한 만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불가피했다는 것으로, 정부의 결정은 타당하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관계에서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그제 베이징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 측의 태도 변화를 기대했지만, 양측의 간극만 확인하자, 강경 대응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고, 정부의 이번 조치로 한·일 관계 악화는 물론 한·미 간 냉기류도 예상된다.

정부 내에선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협정 연장 쪽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2일 일본의 백색국가 배제 각의 결정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일본 쪽에선 아무 반응도 없었다. 결국 협정 종료는 일본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정부가 일본에 이처럼 강력한 경고를 발신한 건 불가피한 선택이다. 경제도발을 먼저 한 일본이 조금이라도 양보하는 태도를 보였다면 유지의 명분으로 삼을 수 있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일본은 한국에 전략물자 수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다면서 안보상의 문제를 들었고, 여기에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문제 삼으니 민감한 군사정보를 계속 공유할 수 있느냐는 주장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정부는 이번 결정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중할 필요가 있다.

지소미아는 2016년 체결 당시부터 비판이 많았지만, 한반도 안보 상황과 한미일 3각 안보협력체제의 필요성 등을 감안해 이를 유지해왔다. 지소미아는 체결 당시부터 ‘일본의 군사적 팽창 야욕에 악용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뜨거운 감자’였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비공개로 밀실 추진하다 여론의 강한 반발로 서명 직전에 협정 체결을 철회했고, 박근혜 정부에선 2016년 야당의 반대 속에 강행 추진한 끝에 협정을 맺었다.

우리는 한미연합사 체제를 통해 일본의 이지스함ㆍ첩보위성 취득 정보를 보완할 수 있는 반면 일본은 북중 접경지역 등의 우리 측 휴민트(인적 정보)를 대체하기 어려워 애초부터 정보 공유 실익도 크지 않았다. 이번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자인 일본은 지금이라도 일방적인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하고 대화ㆍ협상의 장에 적극 나와야 한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한-일 정보협정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며 연장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본이 진정 협정 지속을 원했다면 무역보복부터 중단했어야 한다. 무역보복 중단은커녕 외교적 협의조차 거부하면서 신뢰에 바탕을 둔 군사정보의 교류를 지속하길 바라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아베 정부는 지금이라도 상황의 엄중함을 헤아려 현명한 선택을 하기 바란다.

일본이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예정대로라면 일본은 오는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일본이 한·일 갈등을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 조치를 신중히 재고해야 한다. 또 일본은 한국의 선 조치만 요구할 게 아니라 진지하게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3·1 독립선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올해 제74주년 광복절을 보내면서, 한·일 격돌 설명서 4를 친일 청산(교가)로 정리해 보았다.

우리 4대 국경일 중 3.1절 광복절 2개가 일본과 관계된 사실처럼 일본은 대한민국의 성립과 발전에 있어, 식민지배의 뼈아픈 역사적 사실과 함께 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숙명적 존재다. 축구대항전 같은 스포츠에서 우리에게는 일본과의 경쟁에서 ‘꼭 이겨야 한다’는 정서가 있다.

일본은 사죄를 통해 대국주의의 헛된 욕망을 버려야 한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수탈적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 배상이 이뤄져야 한·일관계가 정상화할 수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교훈처럼, 일제 치하의 수탈과 핍박으로 의(義)에 목말랐기에, 역사적 안목으로 현재를 읽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야 하겠다.

우리는 독재정치를 시민혁명으로 청산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대중화로 전국적 조직화가 이뤄졌다. '박근혜 퇴진'을 성공시킨 촛불이 반일에 앞장선 것은 문재인 정권 2년 동안 촛불의 요구가 실천되지 못한 불만이 '반일'이라는 분출구로 폭발한 것이다.

반일 문제는 친일파에 대한 비판, 일부 지도층의 역사의식 결여 등을 볼 때 앞으로 상당 기간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촛불의 반일 운동은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라는 요구로, 문재인 정권이 최근 일본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예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반일(反日) 대신 극일(克日)을 강조하면서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야 한다. 미래 세대가 협력을 통해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고 강조했었다.

친일청산 기준은 '역사'와 '정신'이다. 이제는 '일제도 역사'라는 주장에 가린 왜색을 제대로 정리해 볼 기회다. 올바른 길은 감정적 반일이 아니라 이성적 극일이며, 극일(克日)·자강(自彊)으로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역량과 힘을 갖춘 강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외세에 맞서 광야에서 울부짖고 돌베개를 벤 채 밤을 지새웠던 선조들을 생각해야한다. 이웃나라의 침탈을 막지 못해 개인의 자유와 재산과 문화와 말까지 빼앗겼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던 선조들의 단호한 결의도 되새긴다.

민족반역자들이 국가유공자로 둔갑한 것은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뒤 친일세력을 지배세력으로 편입시키고, 이승만이 반민특위 강제 해산 등을 통해 일제 잔재들을 옹호하면서 자행된 공공연한 범죄행위였다.

오늘날 국내 일부 지배층이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거나 아베가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폭거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보다도 친일파가 더 문제'라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절규가 가슴 아프게 들린다.

일제 청산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까지 겹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쉽게 해결될 리 없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밝혀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내 안에 식민주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성찰해보면 멈칫거릴 이유가 없다.

친일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다 보니, 일본 아베 정부가 국제 무역질서를 어기는 등 함부로 우리나라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친일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친일세력은 해방이후에도 주도세력으로 떵떵거리며 살아왔다. 군부독재와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 세력으로 탈바꿈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산업화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화장만 바꿔왔을 뿐이다. 친일파의 부끄러운 유산 위에 현재의 역사가 덧칠해진 것이다.

친일파를 그대로 기용한 이승만 정권, 게다가 일본제국 장교 출신 박정희 정권, 군사독재 연장선의 전두환 정권. 이들은 친일파와 후손들이 권력의 기술과 경제력을 거머쥔 상황에서 친일을 청산하기보다 활용하는 쪽으로 나름 묘수(?)를 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 잔재를 제대로 청산한 적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자주독립 기치는 당당하게 세우지 못하고 식민지배 잔재는 뿌리 뽑지 못한 가운데 온갖 유제들은 우리 곁에 마치 우리 것인 양 배어있다. 친일‧친독재 잔재를 발굴하여 철저하게 청산함으로서 민족정기와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한 친일잔재청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난 2015년 영화 '암살' 관객 수가 1,000만을 돌파할 때까지 실제 몇몇 중앙일간지는 이 영화를 일절 기사화하지 않거나, 종북 좌파 운운하는 칼럼 소재로나 다루곤 했다. 친일파 밀정 염석진의 마지막 대사가 뇌리에 와 박힌다.

왜 동지를 배신했느냐고 안옥윤이 싸늘하게 묻자, 염석진이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라고 히스테리컬 하게 대꾸하는 대목이 나온다.

해방 직후 반민특위에 체포돼 구속된 뒤 "까마득하던 조국의 광복이 뜻밖에 얼른 실현됐다"고 한탄했던 최남선의 '자열서(自列書)' 한 구절을 연상케 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역사는 왜 고희를 넘긴 나이임에도 강점기 시절 몸에 억지로 심어진 친일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에서 유관순은 죽어가는 순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그럼 누가 합니까?"

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였던 최린이 3·1 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한 뒤 변절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사장,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조선임전보국단 회장, 조선언론보국회 회장 등으로 복무하며 친일파의 거두가 됐고, 미영(美英)타도연설회 등지에서 "나는 과거를 모두 청산하고 훌륭한 황국신민이 되었다"고 부르짖곤 했다.

그는 반민특위 법정에서 재판장이 변절 이유를 추궁하자 "기미년 당시 일제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서 그들은 그 후 나를 주목하고 위협하고 또 유혹하여 끝내 민족을 배반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며 "오직 죄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라고 침통하게 고백했다. 이어 최린은 다음과 같이 절규해 재판부와 방청객 등 법정 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

"죄를 진 나 같은 놈은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민족 앞에 죄 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은 친일은 반성해야 할 일이고 독립운동은 예우 받아야 할 일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친일을 청산하고 독립운동을 제대로 예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정의로운 나라로 나아가는 출발이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친일파는 독재와 관치경제, 정경유착으로 이어졌으니 친일청산 역사교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역사교체를 위한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려면 친일잔재의 청산이 선결과제임을 명심해야 할 때이다.

한국이 일본에 무슨 모범을 보일지 고민해야 한다.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것일 수 있고, 더 민주화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다운 삶의 질이 높아지는 사회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이 배울 만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극일(克日)이다.

지난 2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80.1%)는 ‘아직 친일잔재가 청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3·1정신 계승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친일잔재 청산’(29.8%)을 꼽았다. 우리 생활주변에는 친일잔재들이 널려 있다.

그동안 일제가 자연의 정기를 차단하기 위해 심어놓은 쇠말뚝을 제거하는 등 친일잔재 청산운동을 벌여왔다. 그러나 아직도 학교 현장이나 지역에는 친일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립묘지에는 버젓이 친일파들이 안장돼 있기도 하다.

일본과의 무역 전쟁이 극일(克日) 운동으로 번지는 가운데, 친일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오욕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고 여전히 우리 사회의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점기에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4,389명의 목록을 정리해, 2009년 11월 7일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됐다.

2001년 역사학자 중심의 편찬위원회가 발족한 때로부터 8년, 사전 발간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 설립으로부터 18년 만이다. 이로써 광복 64년 만에 민간 차원의 친일파 청산 작업이 마침표를 찍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가 마련한 친일의 기준은 사전 앞머리에 나오는 ‘선정기준 해제’가 있다. 연구소는 사전의 수록 대상자를 “을사조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식민통치·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물리적·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다시 두 부류로 나뉜다. “매국행위자와 항일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선 반민족행위자”와 “식민통치기구에 참여했던 고등 관료와 단체의 일원 또는 개인 차원에서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부일협력자 중 역사적인 책임이 크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다.

범위가 지나치게 좁혀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민족반역자만이 아니라 ‘부일협력자’를 포함시켰고, 반대로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민족반역자와 부일협력자 가운데 ‘책임이 무겁다고 판단되는 사람’으로 대상을 한정했다.

일제강점기를 3기로 구분해 파악했다. 을사늑약 이후 1910년까지는 나라를 넘기라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친일은 매국형 친일이다. 그 다음은 1910년부터 1937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식민통치에 협력하라는 것이 주된 요구다. 그래서 직무 책임성이라는 기준에서 고등관 이상 관료를 친일 행위자에 포함시켰다. 고등관은 지금으로 치면 군수에 해당하는 직급으로, 이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 시기 일제 식민지 수탈 행위를 설명할 수 없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던 기간에는 전쟁협력이 친일 행위의 기준이다.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을 주장하고 전쟁 참여를 독려한 행위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식인, 문화예술인, 종교인들이 주요 대상이 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친일인명사전 앱에는 경찰, 관료, 군 등 총 31개 분야에 4,389명의 친일인사가 등재돼있다. 이중 문학(52명), 미술(23명), 연극(43명), 영화(43명), 음악·무용(58명) 등 문화예술 분야의 친일파는 총 219명(약 5%)이다.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음악가는 강연·방송활동·국민개창운동 등의 분야에서 창작과 단체 활동을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사들이다.

친일 잔재는 학교를 상징하는 교가의 작사자나 작곡가들 중에 일제에 부역한 인사들이 적지 않다. 일제에 부역한 작곡가가 지은 교가인 줄도 전혀 모른 채 배우고 자랑스럽게 부르는 일이 허다하다.

특히 교육계 친일 청산은 ‘올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민족의 얼을 되살리고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뜻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교육 현장 곳곳에 깊숙하게 박힌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친일의 역사를 똑똑히 교육하는 일은 반일감정을 자극하자는 것이 아니고 극일(克日)이다. 유·무형의 네거티브 일제 유산 청산 방법에 대해 학교공동체가 머리를 맞대어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핵심은 유산 속에 기생하는 제국주의적 폭력과 어떻게 결별하느냐의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주의와 군국주의 훈육 문화 자리에 인권과 민주주의와 평화교육을 앉히는 일이다. 면서기와 순사의 눈에 보이는 친일 너머에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대동아성전’을 앞서 이끌었던, 그래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을 전쟁과 죽음으로 내몰았던 지식인과 지도자들의 과오와 책임을 묻는 일이다.

기억을 잃으면 다 잃는다. 치욕과 아픔의 역사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기억상실은 곧 존재상실이다. 정신적 식민주의를 넘기 위한 학교 안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은 진행형 독립운동이며, 자강(自彊)의 길이다.

교가, 교표, 교목, 교과서, 교육용어에는 공동체의 지향과 가치가 상징적으로 담긴다. 친일 인사 개인의 예술적 성취나 작품에 대한 취향과는 다른 문제다. 교가의 모순은 일제에 대한 ‘미완의 청산’에서 비롯된다. 원칙이 바로 선 완전한 청산이 이뤄지지 못했기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교가는 식장에서 가끔 부르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학교의 건학 이념을 대표하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교육적 의미를 지닌다.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겠다는 다짐이 들어간 노래이기도 하다.

유독 교육계에 친일의 그림자가 오래 드리워진 것은 친일 세력이 교육계를 지배 해왔기 때문이다. 친일세력들이 학교를 세운뒤 대를 물려가면서 교육계를 주물러 온 것이다. 교가를 친일파들이 작사·작곡했으며 이를 오래도록 불렀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몰 역사성이나 다름없다.

친일 전력의 인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교가에 대해서는 교체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소극적인 협조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선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들이다.

친일 색채가 뚜렷하지 않은 ‘멀쩡한 노래’까지 바꿔야 하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공적 언어’의 의미를 간과했거나, 아니면 나쁜 저의를 숨긴 프레임이다. 불편한 기억에 대한 피로감을 확산시키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다. 고통의 기억을 희미하게 가리고 좋은 쪽만 보라고 한다. 이를 통해 면죄부와 특권을 유지하고 그 고통을 누군가에게, 또는 미래에 떠넘긴다. 친일세력의 행적과 잔재물의 조사가 이뤄진 다음에는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부끄러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예술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고 공과(功過)는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예술을 정치적 목적이나 개인 영달에 이용하지 않고, 저지른 잘못에 대해 충분히 책임을 졌을 때만 정당하다. 예술 활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일제에 협력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방 후에도 영화를 누린 친일음악가에게는 그 공과의 분리 평가는 해당하지 않는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어떤 문장을 쓰는지, 어떤 어휘를 사용하는지가 때로는 한 사람의 인격과 사회의 품격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 어휘가 삶의 질을 결정하기도 한다. 음악도 또한 그렇다.

친일파가 지은 교가를 부르면서 학교가 자랑스러울 수 있나?
서울대의 교가를 친일파가 작곡했고, 서울교대의 교가 가사를 친일파가 썼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너무나도 황당한 친일파 작사 작곡 교가를 어찌하지도 못하면서 학교 내, 교육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수많은 친일 잔재들을 청산하겠다고 말로 떠드는 것은 위선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에서도 친일파가 만든 교가를 부른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오산중고의 교가는 이광수가 작사했다.

시도교육청의 친일 잔재 청산작업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서는 안 된다. 별 뜻 없이 쓰는 교명이나 상징물에 이르기까지 친일의 그림자를 거둬 내야할 잔재가 알게 모르게 생활 속 깊숙이 뿌리 내린지 오래됐다.

독일의 나찌 청산에서 보듯 역사청산에서 시효란 없다. 친일 청산도 바짝 해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끊임없는 연구와 치밀한 추적 없이 친일 역사가 제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시도교육청이 여론몰이 식 과오만 지나치게 찾기 보다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치밀한 조사를 해야 한다.

교가 교체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교육계의 자정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최근 광주교육청을 시작으로 하여 충남, 충북, 경남 등의 교육청에서부터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지은 교가를 확인하여 이를 교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학교의 공식 상징인 교가를 지은 이가 친일반민족 인사라는 것이 확인된 이상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교사들과 동문뿐 아니라 학생들까지 지혜를 모아 이런 교가를 바꿀지, 바꾼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바꿀지 의논해야 한다. 이것이 교육이다. 혹시 결론이 교가를 바꾸지 않는 것으로 나오더라도 그 과정이 또한 교육이다.

교육청이 불구경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 어느 학교에 얼마나 친일인사가 지은 교가가 존재하는지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지 말지에 대해서 해당 학교의 교육주체들과 시민사회가 합리적 토론을 거쳐 교육적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교육부가 광복절 등에 관한 계기교육(교육과정에 없으나 특별한 필요가 있을 때 실시되는 범교과 교육)까지 권장하며 분위기 조성에 나섰지만, 이에 대한 관련 통계와 방침은 없어 학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곳의 교육청이 직접 나서서 교가 작사·작곡자 이력을 전수 조사하거나 적극적으로 바꾸도록 권하고 있다.

서울, 광주, 전북, 전남 네 곳을 한정해 살펴보니 무려 165개교가 친일 인사에 의해 작사 작곡된 교가를 쓴다. 이 중 100개가 넘는 곡이 김동진, 김성태, 이흥렬 작곡이며, 일제 때가 아닌 1950년대 이후에 집중된다. 친일 행적이 명백한 인사가, 제국주의 청산을 교육해야 할 학교의 교가를 공장에서 물건 찍듯 생산한 것이다.

일본 군가와 엔카풍 교가도 많다. 노랫말 또한 ‘학도, 건아, 혼백, 용맹, 아시아 동방의, 거룩한’ 등 군국주의와 전체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제국주의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교육계 권력과 친일 인사들의 불온한 결탁이 의심되는 장면들이다.

지난 1월 광주광역시에서 시작된 '친일 교가 청산' 작업이 전국에 퍼지고 있다. 친일 교가 교체 작업은 1월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이 광주광역시 의뢰로 '광주 친일 잔재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광주 시내 중·고교 13곳과 대학교 4곳이 현제명·김동진·김성태·이흥렬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작사가나 작곡가 4명이 지은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학교별로는 전남대, 숭일중·고(이상 현제명 작곡), 호남대, 서영대, 서강중·고, 금호중앙중·여고, 대동고, 동신여중·고(이상 김동진 작곡), 광덕중·고(김성태 작곡), 광주일고(이홍렬 작곡)의 교가를 친일음악가가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돼 있다.

광주시교육청의 친일잔재 청산작업에는, 백일초등학교 교명을 성진초로 바꾸고, 광덕고, 대동고 등 3곳이 친일 음악가가 작곡한 교가를 바꿨다. 광주일고, 숭일고, 서강고 등 11곳도 교가를 교체하고 있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발원지인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가 ‘친일 교가’를 교체해 오는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90주년 기념일에 새로운 교가를 제창한다는 계획이다.

광주일고는 내년 개교 100주년이다.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광주일고 교가가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둔갑한 것은 부끄러운 과거였고, 이번 교체는 ‘친일 잔재를 털고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의미 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흥렬(1909~1980)은 일제강점기 친일 음악단체인 ‘대화악단’과 ‘경성후생악단’에서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한 인물이다. ‘음악으로 내선일체를 실현’할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인 경성음악협회 등에서 친일 음악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동문·학생·학부모 등으로 교가 교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동문 김종률씨에게 새 교가를 맡기는 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광주일고 교가는 광주 학생독립운동 산실로서 학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교육적 의미를 지니며,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겠다는 다짐이 들어간 노래여야 한다.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데 부역한 작곡가가 지은 교가인 줄도 전혀 모른 채 배웠는데, 학교의 상징이라고 지키는 것은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이 설립한 광주 광덕중·고는 친일 음악가인 김성태가 작곡한 교가를 지난 1월 제창을 금지한 뒤, 교가 교체를 위한 작업에 돌입한 4개월여에 걸친 작업 끝에 광덕고 음악 교사 최재훈 성악가의 작곡으로 새 교가를 만들었다. 새 교가는 지난 5월 13일 개교 기념식에서 제창되었다.

광덕중·고교 신흥수 현 이사장은 3·1운동 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고(故) 신태식 선생의 손자다. 이 학교에서는 그동안 경술국치일, 순국선열의 날 행사와 계기 교육으로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고취해 왔다.

광덕고는 지난 7월, 전국 최초로 학생회 차원에서 고등학생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결의한 학교답게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일깨우는데 앞장서온 전통의 명문이다. 민족적 자존심을 내팽개친 채 뼛속까지 친일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부 기성세대에게 광덕고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준엄한 역사적 경고에 다름없다.

광주광역시는 국·공유지에 위치한 친일 잔재물 22개를 대상으로 10개의 단죄문·안내문 작성 문안 및 형식을 논의했고, 나머지 사유지의 친일 잔재물에 대해 소유자 협의를 통해 장기적 청산 계획을 검토했다.

광주시는 지난 8월 8일 단죄문 개막식을 갖고 친일잔재의 흔적을 없애는 대신 단죄문을 세워 친일잔재 청산을 시작했다. 광주공원 광주학생운동기념비에 오르는 계단에는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 계단입니다'라는 문구가 별도로 붙어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천황을 신으로 모시던 '신사'에 오르는 계단이다.

경기도는 작곡자 친일 논란을 빚은 도 노래 사용을 중단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경기도 노래 공정한 공모전’을 11월 8일까지 연다고 8월 19일 밝혔다.

‘삼각산 솟은 아래 고을고을이 긴 역사 아로새긴 전통의 터전’으로 시작되는 도 노래(도가)는 친일 음악가인 이흥렬이 작곡한 노래로, 새로운 도가 제정은 경기도의 친일잔재 청산 노력의 하나로 시작됐다.

앞서 도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진행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여성 실태조사'를 완료하고, 관련 자료를 도청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게시해 인권교육자료 등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8월 1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는 최근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용역'을 공고했다. 용역을 통해 친일을 목적으로 제작된 유형·무형· 문화잔재에 대한 현황을 전수 조사할 계획이다. 도는 용역결과를 모두 디지털 아카이브 형태로 기록하고 친일잔재 알리기 캠페인 등 본격적인 친일잔재 청산에 나설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경기도와 31개 시·군의 상징 노래 중 총 13곡이 친일 음악인의 곡이다. 올 3월 안산시는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김동진이 작곡한 시가 '안산시민의 노래' 사용을 중단했다. 여주시와 고양시도 마찬가지로 김동진이 만든 시가인 '여주의 노래'와 '고양시의 노래'에 대해 사용중단 결정을 내렸다. 김동진은 1939년 만주국 건국과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곡을 만든 사실이 밝혀지며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부천시는 최근 지역에 설치된 시비(詩碑) 70여개를 전수 조사해 친일 문학인 서정주, 노천명, 주요한과 친일 음악가 홍난파 등의 시(詩)를 새긴 비석 6개를 철거했다. 이들은 일제의 강제 징병을 찬양하고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등의 시와 글을 썼다. 친일파의 시비가 철거된 곳에는 정지용의 '향수'와 나태주의 '풀꽃' 시비가 새로 세워졌다.

친일, 변절, 표절의 '애국가 보이콧'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남양주시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무료음악회를 진행하면서 친일 행적 논란이 있는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을 뒤늦게 제외했다. 남양주시가 안익태의 곡을 행사에서 제외시키자 포천시에서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에서 연주될 애국가 제창을 거부하자는 시민 건의가 힘을 얻기도 했다. 안익태는 일본을 찬양하는 음악활동을 했고, 그가 작곡한 애국가는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한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수원 출신의 근대문화예술인 홍난파도 친일 논란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1968년 홍난파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난파음악상의 역대 수상자는 정경화, 백건우, 정명훈, 조수미 등 한국 음악계를 이끄는 음악가들이다.

그러나 홍난파는 일제시대 때 음악회 수익금을 전쟁 성금으로 사용하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음악으로 일본을 세워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하자’는 내용의 기고를 한 것이 드러났다. 홍난파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면서 2013년 작곡가 류재준은 난파음악상의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최근 문화예술 분야의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자 올 연말까지 '경기도 친일문화 잔재 조사'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친일잔재 청산에 나설 방침을 밝혔다. 도의 행보는 지역 내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한 적극적 친일 청산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수 년 전부터 학교생활 속 언어·문화·구조 등의 일제잔재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학교현장에는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일제잔재가 여전하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2일까지 경기도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인식 조사·분석'을 실시했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데 찬성한 이유는 '민족 자주성을 훼손하고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의도가 담긴 아픈 역사이기 때문'이 47%로 가장 많았다. '일제식 언어표현 등 일제 잔재인 줄 모르고 썼던 익숙함을 청산해야 한다'는 이유가 27%로 뒤를 이었다.

'통제와 감시가 주목적인 일제식 학교 문화는 학생의 민주적 자율성을 통제하고 민주적 학교 문화 발전을 침해하기 때문에 청산해야 한다'는 의견도 25%나 된다.

반대 의견은 19%(31건)다. 이유는 '오랫동안 사용해 익숙하고 일제 잔재도 우리 문화이기 때문'이 68%로 가장 높았다. '일제 잔재라도 적당한 통제와 자율은 필요하고, 질서 유지에 도움을 준다'는 의견이 22%, '일제 잔재라도 대체할 만한 용어가 없어서'라는 의견이 10%를 기록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6년 ‘학교이름 바꾸기 운동’을 추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교명을 바꾸는 데 대한 동창회의 반발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몸에 한 번 체화된 일제 잔재의 여진은 제때 청산될 기회를 잃으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수학여행·수련회·소풍'은 일본에 조선인 학생들을 보내 일본문화를 익혀 민족정신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1907년부터 행해진 활동이었다. 문서상으로 '문화탐방'이나 '문화체험활동' 등 여러 대체용어로 바꿨지만, 교사나 학생들의 구어상 용어로 남아있다.

8월 18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반장·부반장', '파이팅' '~계(屆)', '초등 교과서 속 일제 잔재 놀이', '구령대·조회대', '가이즈카 향나무 교목' 등 바꿔야 할 일제잔재가 수두룩했다.  

'반장, 부반장'은 일제시대 급장(級長) 또는 반장(班長)에서 유래했다. 당시 이들은 학급에서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으로, 주로 담임교사에 의해 지명돼 담임교사의 대리자로 활동했다. 학교현장에서는 회장, 부회장 등으로 대부분 교체됐지만 습관적인 일상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학생들이 응원할 때 많이 쓰는 '파이팅'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대 군인 출진 구호로 부른데서 유래했다. 휴학계나 결석계로 자주 쓰이는 '~계(屆)'는 일본에서 공문서를 지칭하는 '~とどけ(토도케·屆)'를 그대로 옮긴 표현이다. 학사운영에 자주 사용하는 일본식 한자표현이다. 

현행 교과서에 실린 일제잔재 놀이도 많다. 대표적으로 초등학교 교과서 속 '우리 집에 왜 왔니'는 일제 강점기 위안부 강제 동원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 놀이였다. '꼬리 따기', '대문놀이', '비석치기' 등도 일제 잔재 놀이다. '구령대·조회대'의 학교구조도 높은 구령대에서 교장이 말하고 학생들이 아래에 줄서서 듣는 모습으로 일제 군국주의의 잔재다.

학교 내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가이즈카 향나무 교목'도 이토 히로부미가 들여온 친일잔재로 소나무 등 다른 나무로 교목을 교체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에 '훈화'는 상사가 부하에게 '훈시'한다는 일제강점기 군대 용어로 감시와 통제를 위해 사용했다.  

'동서남북' 등 방위를 일컫는 용어나 순서표시가 들어간 학교 이름도 일제가 식민통치에 유리하도록 개편한 것이다. '간담회'는 일본식 (懇談會 콘단카이:こんだんかい)를 한글로 표기한 낱말이다. '사정회·사정안'도 일본어식조어표현으로 생겨난 용어다. '교실 정면 태극기'도 일장기를 액자에 넣어 게양하고 일제에 충성심을 강요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일제잔재 인식 개선을 위해 학생(학생자치회) 중심으로 ▲언어순화 프로그램 ▲일본잔재 용어와 그 대체용어 홍보 ▲일본말의 순 우리말 대체캠페인과 퀴즈대회 ▲일제잔재 알리미 모집 등 다양한 활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의견이 나왔다.  

교육활동과 연계한 청산 방법도 제시했다. ▲'올바른 역사알기' 교실수업 ▲바른 역사관에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는 역사수업 ▲학교로 찾아가는 역사수업 등을 통해 청산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역사 교사 같은 전문가들이 문헌 조사 등을 통해 근거가 높다고 판단한 12가지 의견을 발표했다. '반장', '부반장'은 일제강점기 담임교사 대리자로 활동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가리켰다. 이 말을 '회장', '부회장', '학급 대표'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또한 '차렷', '경례'는 군대식 인사로 일왕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의미의 일제 흔적이다. 이것을 '안녕하세요' 또는 '고맙습니다'로 바꾸자는 의견도 나왔다.

구령대와 조회대도 일제 군국주의 잔재이므로 휴식공간이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있었다. 이 밖에 친일파가 작사 작곡한 교가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는 의견과 초등교과서 속 일제 잔재 놀이를 삭제하고 우리나라 전통 놀이로 대체하자는 의견 등이 경기도교육청이 고른 12가지 일제 잔재에 포함됐다.

친일파 시인의 비석은 철거된다. 경기도 부천시는 상동의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세워진 미당 서정주 시비를 없애기로 했다. 서정주의 ‘동천’은 정지용의 ‘향수’로 교체했고, ‘국화 옆에서’는 나태주의 ‘풀꽃’으로 바꿀 예정이다.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흔자서’는 철거했다.

안양시에서는 옛 서이면사무소의 문화재 지정 퇴출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안양시는 29억여 원을 들여 이 건물을 매입한 뒤 해체·복원작업을 거쳐 2001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100호로 등록했다. 서이면사무소는 친일수탈의 현장으로, 상량문에 경술국치를 찬양하는 글이 발견됐다.

경기도의회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의 강제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도의회는 본회의에서 국립묘지 안장 친일파 강제이장을 위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의결했다.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지를 강제 이장하고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의 국립묘지 안장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만 하더라도 보성중고, 대광중고, 오산중고, 배화여중고 등 100년 역사를 가진 전통의 사립학교들이 아직도 이 친일파 이광수가 작사한 노래를 공식 교가로 채택하여 부르고 있다.

'천황폐하 중심의 일본 정신으로 국체 관념을 뚜렷이 함으로써 시국인식을 고취하고 황군을 격려한다'는 취지로 만든 <가는 비>, <서울>, <전송>, <후지산을 바라보며>를 직접 작곡하고, 이외에도 수많은 일본제국주의 찬양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기획하였던 현제명이 작곡한 노래를 교가로 채택하여 현재까지 학생들에게 부르게 하는 학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서울대학교 음대 초대 학장을 지낸 그의 동상이 지금도 국립서울대학교의 교정에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서울대, 명지대, 인하대, 경북대, 전남대 등 전국의 유명 대학들이 그가 작곡한 노래를 교가로 지금도 부르고 있다. 대학뿐 아니라 서울 명지중고, 경북 김천고, 전북 고창고, 전남 숭일중고 등 전국적으로 수십 곳에 이른다.

현제명이 우리나라 음악계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친일 행적이 너무나 뚜렷하다. 현제명은 여러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굵직한 직책을 많이 거쳤고, ‘일본 정신을 세계 인류를 지도할 원리로 삼아 일본 정신 사도로서의 영예와 책임을 가지고 활동하겠다’고 다짐했을 정도다.

이외에도 대표적인 친일 음악가인 이흥렬, 김성태, 김동진, 계동식, 임동혁, 김생려 등이 작곡한 노래를 교가로 채택한 학교가 수백 곳에 이르며, 이원수, 주요한, 최남선, 이광수, 서정주, 곽종원 등 친일 문인들이 작사한 노래를 교가로 채택한 학교들도 부지기수이다.

특히, 신일고(주요한 작사, 김동진 작곡), 건대부고(곽종원 작사, 김성태 작곡), 숭문중고(주요한 작사, 김동진 작곡), 배명중고(서정주 작사, 이흥렬 작곡) 등 친일파가 지은 가사에 친일파가 곡을 붙인 학교도 여럿 있다. 그러니까 교가의 작사자와 작곡자가 모두 친일인사인 경우이다.

가장 웃기고도 슬픈 일은 작사는 독립운동가가 하고, 작곡은 친일파가 한 교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명지중고(이희승 작사-현제명 작곡’), 남강고(이희승 작사-김동진 작곡), 서강대(이희승 작사-안익태 작곡) 등의 학교는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이희승 선생이 가사를 짓고 친일음악가인 현제명, 김동진, 안익태 등이 곡을 붙인 노래를 지금도 학생들이 교가로 부르고 있고, 공립학교인 성동고 역시 독립운동가인 정인보 선생이 지은 가사에 친일파인 김성태가 곡을 붙인 노래를 교가로 부르고 있다.

영훈초, 한신초 등 사립초등학교에서부터 서울사대부속초, 서울교대부속초. 효제초. 덕수초 등 소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국공립초등학교들도 친일파들이 작사 또는 작곡한 교가를 부르고 있다.

주로 사립학교인 경우가 많지만 국공립학교 중에서도 친일 인사가 지은 노래를 교가로 부르고 있는 학교도 의외로 많다. 사립학교도 그렇지만 어떻게 공립, 국립학교까지, 그것도 초등학생들이 부르는 교가를 친일파들이 지은 곡으로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휘문고에는 1910년 한일합방조약을 지지해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민영휘의 동상이 남아 있다. 영훈초등학교와 영훈고에는 설립자 김영훈의 동상이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고위관료를 지냈다. 앞서 밝혔듯이 고려대와 중앙고에는 김성수의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독립선언서를 기초했으나 친일파로 변절한 최남선은 경신중고와 중앙중고, 휘문중고의 교가를 작사했다. 친일파 이흥렬과 김성태 김동진 현제명 등은 수십 곳의 교가를 작곡했다. 일본군 출신을 칭송하는 교가도 있다. 서울 성남중고 교가는 설립자인 일본군 출신 김석원을 기린다.

8월 1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따르면 서울의 학교 7곳에 친일파 기념물이 세워져 있고, 113개 학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무역 도발로 일제 제품 불매를 넘어 극일(克日) 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친일파 교가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일제 잔재가 남은 교가 퇴출 운동이 활발하다. 서울 구로중은 올해 초 일제 잔재 퇴출 티에프(TF)팀을 꾸려,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인천시교육청이 내년부터 ‘일상과 교육 안팎에 만연한 일제강점기 흔적 지우기에 나선다’고 16일 밝혔다. 먼저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 현황을 파악해 사실이 확인 된 학교에게 교가 교체를 권고할 방침이다. 3.1운동 발상지인 창영초등학교 교가는 친일파 임동혁이 작곡했다. 고교 7곳도 현제명, 모윤숙, 김동진, 이홍렬 등이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다.

전남도교육청이 지난 4월 1차로 전수조사를 벌여보니 115개 학교에서 친일음악가 작곡 교가(18교), 일제 양식의 석물(33교), 일제식 용어 생활규정(64교) 등을 확인했다. 친일 성향 음악가가 작곡한 교가를 부르는 학교가 18곳, 일제 양식 석물이 있는 학교가 33곳, 일제식 용어가 담긴 생활 규정이 있는 학교가 64곳이었다.

전북도교육청은 올해 예산을 확보해 도내 학교 10곳의 교가를 교체할 방침이다. 2020년에는 학교 15곳의 교가를 추가로 바꾼다. 전주시는 14일 덕진구 동산동의 이름을 여의동으로 바꾸는 선포식을 가졌다.

동산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산리로 불리던 지역의 행정명이 됐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창업자의 장남이 1907년 자신의 아버지의 호인 '동산'을 따 창설한 동산농사 주식회사 전주지점이 있던 데서 유래했다. 시는 동산동 주민 설문조사 등을 거쳐 105년 만에 여의동으로 이름을 바꿨다. 여의동은 '뜻을 원하는 대로 이뤄주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충북교육청이 2월엔 '역사 바로 세우기 추진단'을 꾸려 도내(道內) 초·중·고교 469곳을 전수 조사한 뒤, "26개교가 친일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교가 교체를 권고할 예정이다.

도교육청은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역 내 학교에 심어져 있는 일본식 향나무 전면 제거를 추진하다, 비용문제로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충남도교육청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72개교를 대상으로 학교 일제 청산 이행 점검에 나섰다. 태안 고남초를 포함 12개교는 동문회와 학교 구성원 의견을 수렴했지만, 19개교는 여전히 손을 쓰지 않았다. 학생들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김성태(11개교), 이홍렬(6곡), 김동진(3곡) 등이 만든 교가를 여전히 부르고 있다.

관내 학교 29곳에서 군복을 입은 일본인 학교장이나 칼을 찬 일본인 교사사진, 일장기 게시 등을 파악해 철거작업에 나선다.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가 있는 곳은 31곳이나 된다. 일제강점기의 징계규정을 그대로 생활규정으로 사용하는 학교도 80곳에 이른다.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는 학교구성원들이 수정여부를 결정하도록 권고했다.

충남 태안에 있는 고남초등학교는 지난달 18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고 교가를 바꾸기로 했다. 교가를 만든 김동진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려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동진은 1940년부터 1950년까지 일제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노래를 작곡했다며 민족문제연구소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3월부터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학교 속 일제 잔재 청산지원팀’을 꾸려, 교가 등 학교 속 일제 잔재를 찾아 청산하는 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부산교육희망네트워크는 지역의 122개 학교가 교목으로 일본산 향나무를 교목으로 쓰고 있고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를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도 16개교라고 최근 지적했다.

경남도교육청이 식민통치기에 일제를 상징하는 교목·시설물, 친일 음악인이 참여한 교가, 일제식 교단 언어와 학교 공간구조 등을 제거하기 위해 '일제 잔재 청산, 우리 얼 살리기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경남 지역만 해도 창원대 교가의 경우 친일 작곡가 조두남의 곡에 친 독재 성향의 이은상이 작사했다. 이은상은 도내 학교 교가만 해도 10여 개 이상을 작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흥렬, 김동진 등 일제의 징병제를 찬양하는 데 부역한 음악인들도 경남 지역 각 급 학교의 교가를 지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얼 살리기 사업’은 경남학생 독립운동사 편찬, 기념식, 계기교육, 체험활동, 우리지역 독립운동 후손의 집 명패 달기 운동, 역사교원, 경술국치일 찬죽 먹기 운동, 고교생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탐방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역사교육현황 전수조사에서는 경남 42곳에 소녀상이 설치됐고, 역사교육 관련 동아리가 초등학교 20개교 575명, 중학교 68개교 1천39명, 고등학교 116개교 1천857명으로 총 204개교 3천471명이 참여하는 등 매우 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실시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어 잔재가 사라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국민들의 무관심’ ‘일본어 잔재에 대한 교육 및 홍보 부족’ ‘정부의 무관심’ 순으로 나타났다.

교육계에서 일제 잔재 청산은 오래전부터 시도됐으나 1990년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꾼 게 유일할 정도로 해결이 어려운 과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민 역사를 극복하는 것은 이해관계 집단이나 관행에 익숙한 사람들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다.

문제는 교육현장의 일제 잔재 청산 의지와 달리 정부 차원에서의 친일파 교가, 일본산 교목 폐기에 대한 뚜렷한 방침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학교를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친일 잔재 종합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고 현재 계획도 세워지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에서 원하면 지역 교육청과 협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항일 분위기에 위안부 ‘기림의 날’과 광복절에 관한 계기교육까지 권장한 교육부가 실제 학교 현장의 친일 잔재 청산 필요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의지만 있으면 바로 실천 가능한 것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걸리는 것이 있다. 역사를 바르게 가르칠 의무가 있는 학교에서 가능한 사안이 물론 많다. 국민이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이런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정부가 일본어 잔재에 대한 교육 및 홍보를 해나간다면 못할 것도 없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명암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동안 우리는 유리한 면만 의도적으로 썼다. 몰랐으면 무지이지만, 알면서도 안 쓰면 왜곡이다. 부작위에 의한 범죄다. 즉, 가만있어도 범죄에 동조한 것"이라고 했다.

방 실장은 "친일 행적이 밝혀진 마당에 이제는 당사자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후세에 올바른 교육을 하기 위해 안내문을 세워야 한다. 어두운 역사도 우리가 용기를 갖고 과감히 대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용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 퇴색,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당장 없앨 수 없거나 없앨 필요가 없는 것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역사적 의미를 따지고 토론을 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 교육이다.

우리 내부의 아픈 역사를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의 원칙을 제안한다. 우리 내부의 친일을 기억함으로써 일본-가해자, 조선-피해자라는 단순도식을 넘어 제국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공인들을 중시한 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차원이다. 후대의 기념사업 대상이 될 정도의 인물이라면 윤리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책임 있는 지도층이라면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 영광만 가져가고 과오는 가져가지 않겠다면 그것은 기회주의다. 친일청산에 대한 비판은 친일을 옹호하고 항일을 흠집 내는 일이다.

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중앙회 한상석 회장

심일보 기자 jakysim@naver.com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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