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희 前충주시장/시사플러스 칼럼니스트
충주는 기업도시를 중심으로 '서충주'가 급부상하고 있다. 기업도시를 유치하던 시절을 회상해 본다.
 
■ 국가균형발전정책에서 충주를 제외해서야
 
필자(한창희)가 보궐선거로 충주시장에 당선된 2004년 6월경에는 노무현 참여정부가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고 있었다. 수도권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 당시에는 혁신도시라는 말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공공기관을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으로 이전한다는 기본구상만 있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각지자체가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참여정부가 국가를 균형되게 발전시킨다는데 대해 충주시민들은 기대를 많이 했다. “아! 이제 충주도 발전될 수 있겠구나”하고 말이다.
 
그런데 국가균형발전의 메가톤급인 행정중심 복합도시를 충남 공주·연기 지역에 건설함으로 충청도는 공공기관 이전지역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정책 차원에서 말이다. 얼핏 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충주를 비롯한 충북 북부지역은 행정도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거리도 ‘충주에서 공주’가는 것보다 ‘충주에서 서울’가는 것이 훨씬 가깝다. 충북과 충남은 같은 충청도라고 하지만 사실 동질성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강원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충주시가 충청도라는 이유만으로 국가균형발전정책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충주시민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식민통치시대에 일제는 경부선 철도를 건설하면서 서울-부산의 지름길인 서울-이천-충주-대구-부산 노선 대신에 서울-천안-대전-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경부 축을 선택했다. 이어서 일제는 조선시대 충청감영이 충주에 있었는데 행정구역을 개편하며 충북도청을 경부 축에 가까운 청주에 두었다. 이때부터 충주를 포함한 중부내륙권은 발전에서 완전히 소외됐다. 우리나라 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한 경부고속도로 또한 철도노선과 같은 현재의 경부 축을 따라 건설됐다. 충주를 비롯한 중부내륙권은 100년 이상을 발전의 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국가균형발전은 중부내륙권처럼 발전 축에서 소외된 지역에 정책적 배려를 한다는 것 아닌가. 참여정부가 개념정리도 없이 국가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시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필자는 고심 끝에 시민단체와 더불어 “공공기관이전 충북배제방침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초강수를 쓰지 않으면 중앙정부가 기본방침을 바꿀 리가 만무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공기관이전 충북배제방침철회 범시민협의회’를 구성했다. 의장은 김무식 당시 시의회 의장이 맡았다. 사회단체도 효율적으로 연대하기 위하여 ‘충주시 사회단체연합회’를 구성하였다. 이사장은 정종수  충주 새마을회장이 선출되었다. 
 
범시민협의회를 중심으로 문화회관에서 첫 집회를 열었다. 이어서 층주시청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정종수 회장을 비롯한 사회 단체장들의 삭발 시위도 있었다. 특히 김경숙 여성단체 혐의회장과 이명주 새마을부녀회장을 비롯한 여성 지도자들의 삭발은 시민들을 숙연케 하였다. 전영상 건국대 교수가 당시 사회단체연합회 사무국장이었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기획력이 뛰어났다. 부인 최영신 여사도 삭발케 했다. 전영상 국장 아버님이 너나 삭발하고 시위하면 되지 며느리까지 삭발시켰다며 대노하셨단다. 유일하게 부부가 모두 삭발했다. 양반동네 충주에서 여자가 삭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에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항의집회는 밤에도 촛불시위로 이어졌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금도 했다. 무려 1억2천여만원이 모금됐다. 충주시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민관이, 온 시민이 혼연일체가 되었다.
 
충주에서 시위하는 것만으로는 중앙정부가 눈도 꿈적하지 않았다. 충주시민 3천여 명이 2004년 8월24일 광화문 앞으로 집결하였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도 강경하였다. 시장이 집회에 참여하면 반역으로 간주하겠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시장이 참여하면 충주시에 수십, 수백 배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집회시작하기 전에 잠깐 들러 시민들을 격려하고 공식집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겠다. 예정된 집회에 불참케 되니 갑자기 일정이 비었다. 평소 교분이 두터운 서울시 이춘식 정무부시장이 문득 떠올랐다. 전화를 걸었다. 마침 자리에 있었다. 서울시청에 들렀다. 마침 30분 후에 외국에서 귀중한 손님이 오기로 예정돼 있어 이명박 서울시장이 잠시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이명박 시장은 예고 없이 찾아온 시골 충주시장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서울에 올라온 이런저런 사정을 말씀드린 후에 충주시장으로 서울시장에게 요청하였다. ‘서울시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충주시가 수변구역 지정 등으로 불편한 점이 많다. 후배인 충주시장이 방문하였는데 충주시에 선물이라도 하나 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유머러스하게 떼를 썼다. 이명박 시장은 즉석에서 충남 서천에 지으려고 하는 서울시 공무원휴양소 겸 수련원을 옮기든지 충주 수안보에 또 하나 짓든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마침 임동규 서울시의회 의장도 충주사람이라 적극 협조했다. 이렇게 하여 현재 수안보에 서울시 공무원 제3연수원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는 참 묘하다. 손가락으로 어디를 가리키면 손가락 방향을 쳐다보는 게 아니라 손가락에 낀 반지를 먼저 쳐다본다. 충주시민들의 상경집회 때도 언론들이 대거 몰렸다. 충주시민들의 억울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익현 선생 이래 100년 만에 재현되는 “지부상소”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지부상소(持’斧上疏)‘란 옛날에 신하가 임금께 상소문을 올릴 때 ‘저의 주장이 틀렸으면 이 도끼로 저를 치십시오’ 하고 도끼를 놓고 결연히 올린 상소다. 충주시 향교 유림에서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데 충북배제는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대통령께서 굽어 살펴 주십시오.’하고 지부상소를 올렸다. 이  ‘지부상소(持’斧上疏)‘사진이 다음날 주요일간지 1면에 게재됐다. 마침내 8월29일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기관을 이전하는데 충북배제 방침은 없다고 천명하였다.  ’지부상소‘ 덕을 단단히 본 것이다.
 
이로써 행정중심 복합도시와 상관없이 충북도 국가균형 발전정책 대상에 포함되게 됐다. 충주시민이 충북을 살린 것이다. 물론 이원종 도지사를 비롯해 충북 국회의원들이 모두 열심히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충주시민들이 시위를 하며 강하게 어필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소속의 노영민 의원의 말이 생각난다. 충북 국회의원 및 도청간부 연석간담회에서 노 의원은 “공공기관이전 충북배제 방침을 철회하는 데 충주시민들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며 충주시민들의 공을 높이 평가했다. 느닷없이 혁신도시 횡재(?)를 한 진천과 음성군민은 충주시민들에게 고맙게 여겨야 한다.
 
공공기관 충북배제방침을 철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숨은 공로자가 또 있다. 바로 충주 시그너스CC 강금원 회장이다. 강회장은 당시 소통령이라고 불릴 만큼 실세중의 실세였다. 필자는 시민들과 함께 상경집회도 하며 ‘공공기관충북배제방침철회’ 시위를 주도했지만 난감했다. 정부에서 기본방침을 철회하지 않으면 계속 시위를 할 수도 없고, 아무 실익도 없이 슬며시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고민 끝에 강금원 회장을 찾아갔다.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강 회장은 친절하면서도 통이 크고 합리적이었다. 강회장은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시장이 된 필자의 설명을 듣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한시장이 보기 좋다. 한 시장 같은 지자체장이 많아야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성공한다.’며 아무조건 없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강금원 회장과 당시 김한길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함께 만났다. 김한길 위원장이 필자의 건의를 듣자마자 그건 한나라당에 가서 말하라고 막말에 가까운 핀잔을 퍼부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국가균형발전정책은 반대하면서 공공기관은 자기지역으로 오게 해 달라’는 게 말이 되냐며 한나라당을 거세게 비난했다. 강회장이 옆에서 보기에 쑥스러웠는지 필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같이 점심 식사하기는 좀 그렇다며 먼저 가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내일 뵙기로 했는데 본인이 직접 건의를 해보겠다고 했다. 필자가 구박을 받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강금원 회장한테서 이틀 후 8월27일 아침 전화가 왔다.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이 모레(8월29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기관을 이전하는데 충북배제 방침을 정한 적이 없다고 천명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랬다. 강회장이 정말 대단한 실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공공기관 충북배제 방침 철회, 다시 말해 국가균형발전에 충북도 포함되게 된 것이다.
 
■ 충주가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참여정부는 국가균형 발전정책을 크게 3가지로 추진하였다.
 
첫째는 행정중심 복합도시 건설이요, 둘째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여 소위 혁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셋째는 지방에 주요기업을 이전하여 기업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필자는 우선 충주에 ‘지식기반형 기업도시’를 유치하기로 기본방침을 정했다. 시청에 투자유치지원실을 설치하고 주요기업들과 콘소시엄을 구성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 기업도시는 이미 추진하고 있는 것을 합법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순진하게 충주시가 뛰어든 것이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 끝에 동화약품, 이수화학, 임광토건, 주택공사, 포스코 건설을 설득하여 2005년 4월 14일 컨소시엄을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박영선 실장을 비롯해 투자유치실 공직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충주시가 포스코 건설, 주택공사 등 굴지의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니까 제일 놀란 것은 이원종 도지사였다. 도청에서도 성사시키기 힘든 일을 충주시에서 해냈다고 격찬을 했다. 4월 14일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는 도지사께서도 직접 참석하였다. 포스코 건설 한수양 사장과 주택공사 한행수 사장께 거듭 감사를 드린다. 솔직히 한(韓)씨 종친회 덕을 좀 보았다. 충주출신인 포스코건설의 당시 홍광수 부장의 역할이 무척 컸다. 
 
시장인 필자가 직접 4월15일 지식기반형 기업도시 신청서를 제출하러 건교부에 갔다. 건교부에서도 깜짝 놀랐다. 실무진에서는 서류를 접수하려 들지 않았다. 외출한 담당팀장이 돌아와서야 서류를 접수했다. 예정에도 없던 충주시에서 신청서를 접수하니 놀랬던 것이다. 강원도는 혁신도시가 춘천이나 강릉에 건설될 예정이었다. 중부내륙권과 원주 배려차원에서 원주시를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충주는 충청도에 메가톤급인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함으로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우리는 백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지역발전의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가 없었다.
 
우선 충주대 홍기배, 박홍윤, 김태진, 류상규 교수를 중심으로 전략기획팀을 만들었다. 기업도시 명칭을 ‘그린 테크노폴리스(green technopolis)’로 정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였다. 사회단체연합회를 중심으로 “기업도시 유치위원회”를 만들어 범시민적으로 유치운동을 전개했다. 최근배 충북방송 사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서울에 영향력있는 출향인사는 다 찾아갔다. 안필준 대한노인회장,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이상문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 등 수많은 출향인사들이 고향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나서 주었다. 기업도시위원들과 평가단이 충주를 방문할 때는 수많은 시민들이 환영하며 응원을 보냈다. 길거리에는 기업도시 유치를 염원하는 현수막이 물결쳤다.
 
마침내 2005년 7월8일 추병직 건교부장관이 충주시와 원주시를 지식기반형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동시에 발표하였다. 이날이 공교롭게도 충주시 시(市)승격 49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충주시는 축제 분위기였다.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청앞 광장으로 모였다. 온 시민이 함께 유치한 기업도시 시범지역이라 시민들은 감격스러워 하였다. 
 
■ 혁신도시는 진천·음성으로 가다
 
우리 충주는 이미 유치한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합하여 “기업형 혁신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충북에 배정된 14개의 공공기관 만으로는 혁신도시를 만들기가 곤란하다. 14개의 공공기관의 임직원을 다 합해도 2천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또 충주가 유치한 기업도시 시범지역은 기업도시를 건설할 건설회사가 주축이 되어 컨소시엄만 구성했지 아직 입주할 주요기업을 유치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한데 뭉쳐 ‘기업형 혁신도시’를 만들어야 안성맞춤인 것이다.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데 ‘충북배제방침’을 철회하게 만든 것이 충주시민이다. 그로인해 충북에 조그만 공공기관 14개가 배정된 것이다. 그러면 혁신도시는 제1도시 청주는 행정도시와 근거리로 제외되었으니 당연히 제2도시인 충주시에 건설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가균형발전의 개념에도 부합된다. 국가균형발전은 전국 시도에 공공기관을 골고루 나누어 주자는 것이 아니다. 전국의 주요거점지역을 정해 공공기관과 기업을 이전시켜 특화된 도시를 만들어 수도권 밀집현상을 직능별로 효율적으로 분산하자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개념정의를 분명히 했어야 했다.
 
그런데 중앙정부는 개념정리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각지자체는 자기지역에 공공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됐다. 국가균형발전의 기본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원도와 충북은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동시에 유치해 상황이 비슷했다. 기업도시가 원주시로 가니까 혁신도시는 춘천이나 강릉에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려오는 공공기관에서 교통이 좋은 원주시로 가겠다는 데야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원주시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모두 유치하는 횡재를 했다.
 
충북도 공공기관을 이전하는데 충북을 제외한다고 할 때는 가만히 있던 지자체가 혁신도시를 자기 시·군으로 유치하겠다고 난리도 아니었다. 참여정부는 공공기관 지방배정만 해놓고 나머지는 각시·도와 공공기관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러니 광역단체장인 도지사도 죽을 맛이다. 각지자체는 어미가 먹이 물고 오면 아우성치는 새끼 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또 내려오는 공공기관은 지역사정은 아랑곳없이 자기네 편리한 지역으로 가겠다고 점령군 행세를 하고 정말 아니꼬워서 못 볼 지경이었다. 충북에 배정된 공공기관이 충북 북부지역은 죽어도 싫단다. 지방에 내려가기 싫고 내려갈 수밖에 없다면 행정도시 가까운 청주인근지역으로 가겠단다. 아주 완강했다. 혁신도시 지역선정은 입주할 공공기관이 좌지우지했다. 결국 음성-진천지역으로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충주시민들은 또 다시 단결력을 보여 주었다. 충주시 사회단체연합회(회장 정종수)를 중심으로 혁신도시는 혁신도시를 오게 만든 충주시로 와야 된다며 실내체육관 앞에서 시민 2만여명이 모여 대중집회를 갖고, 충주시 관아공원에서 청주 도청까지 ‘삼보일배’ 시위를 시작했다. 시장인 필자와 김무식 시의회 의장이 선두에 섰다. 삼보일배는 사회단체연합회 주관으로 릴레이로 계속됐다. 삼보일배 시작 다음 날에는 비가 왔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삼보일배 시위는 계속됐다. ‘삼보일배(三步一拜)’는 세발짝 걷고 한번 절하며 ‘혁신도시를 충주로 오게 해주십시오’하고 기원하는 것이었다. 원래 삼보일배(三步一拜)는 불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여기서 잠시 재미있는 장면을 소개하겠다.
 
기업도시 유치위원장인 충북방송 최근배 사장은 기독교 장로였다. 거의 전시민이 참여하는 삼보일배를 기업도시 유치위원장으로서 참여 안하기도 그렇고, 하자니 삼보일배는 불교에서 유래된 것이라 장로로서 무언가 찝찝했는지 흰 두루마기를 입고 큰 십자가를 들고 절은 하지 않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사람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웃을 수도 없고, 서로 쳐다보며 눈으로 살짝 웃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충주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삼보일배를 하며 도청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에 제일 당황한 것은 이원종 도지사였다. 평소 사이가 좋은 이원종 지사께서 그 당시 무척 섭섭했다고 한다. ‘한 시장이 속사정을 다 알면서 그럴 수 있냐’고 말이다. 그렇지만 할 수 없었다.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연계하여 ‘기업형 혁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있어 중부내륙권지역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 그야말로 국가균형발전이 되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충주시를 선정했으면 거기에 걸맞는 공공기관도 함께 보내줘야 마땅하다. 지식기반형 기업도시와 컨셉이 맞는 소프트웨어 진흥원 등 공공기관이 충북으로 내려오는데 지역이기주의와 내려오는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이기심 때문에 개념없이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를 따로 건설하는 게 말이 되는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무책임하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키면 소임을 다했다고 여긴 것이다. 기업도시와 혁신도시가 성공적으로 건설될 수 있도록 지역실정에 맞게 개념정리를 확실히 해줬어야 했다. 특히 충북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은 그 규모가 작아 마땅히 ‘기업형 혁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중앙정부가 사려깊지 못한 것이다.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은 건 제천시였다. 
충주는 기업도시에 걸맞는 공공기관 3~4개만 오면 혁신도시를 제천에 양보할 수 있으니 같이 연합하자고 제안하였다. 충북 제2도시인 충주와 제3도시인 제천이 연합하여 공조하면 공공기관의 고집을 꺾을 수 있어 보였다. 이원종 지사도 찬성했다. 두 도시를 다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천은 충주는 기업도시를 유치했으니 혁신도시는 제천으로 와야 된다며 충주시의 공조제안을 일축했다. 떡줄 사람인 이전할 공공기관은 마음도 안 먹는데 말이다. 우리는 괴산과 음성 충주의 삼각지점에 혁신도시 건설을 수정 제안했다. 혁신도시가 진천과 음성 중간지점으로 기울자 제천시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테니 공조하잔다. 버스 지나간 다음에 손 흔들고 나타난 꼴이다. 충북도와 이전 공공기관은 지자체를 하나라도 더 아우르는 전략으로 우리의 공조 아이디어만 받아들여 접경지역을 선택했다. 결국 혁신도시는 진천과 음성 중간지역으로 결정됐다.
 
혁신도시가 진천·음성지역으로 결정되자 다른 지자체서는 벌집 쑤셔 놓은 것 같았다. 도청에서 충주의 대응방향에 대해 긴장하였다. 우리 충주시는 한번 결정된 정책이 바뀔 수 도 없는데 깨끗이 승복하기로 하였다. 충주시가 깨끗이 승복하니까 격렬히 항의시위를 하던 다른 지자체가 머쓱해졌다. 이원종 지사가 ‘고맙다’고 전화를 하였다. 의외로 충북은 혁신도시 후유증이 적었다. 혁신도시와 무관한 청주사람들은 "충주사람들 대단하다’고 격찬하였다.
 
꿩 대신 닭이란 말이 있다. 충주시는 혁신도시 유치는 실패하였지만 기업도시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단결력을 맛보았다. 민관이 하나가 되어 상경시위까지 한다는 것은 옛날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또한 경쟁을 하다가도 정책이 일단 결정되면 깨끗이 승복하는 민주시민의 성숙함도 보여 주었다. ‘우리도 하면 된다’ 는 자신감을 얻었다. 당시 제천 송광호 의원은 충주시의 기업도시 착상이 참 좋았다며 부러워했다. 제천시가 충주시와 공조를 하지 못한 것도 아쉬워했다.
 
충주시민이 하나가 되어 유치한 기업도시를 후임 김호복 시장이 착공을 하고, 우건도 이종배 시장이 차질 없이 건설하고, 조길형 시장이 “서충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역대 후임시장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충주시 인구가 줄지 않는 데는 기업도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도시를 유치하기 위해 애를 많이 쓴 시민들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민선 3,4기 충주시장 한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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