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 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정재원 기자] 서울에 사는 30대 A씨는 며칠 전 남편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들렸다가 대파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3,000원 정도였던 대파 한 단 가격이 7,500원에 팔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장을 보고 나왔지만, 갑자기 치솟은 장바구니 물가에 1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A씨는 "최근 대파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뉴스를 보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면서 "인터넷 카페에서 주부들이 남긴 후기를 보니 대파 한 단에 1만원이 넘게 팔리는 곳도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대파 가격이 8,000원이 말이 되나", "우리 동네 마트에서 달걀 8,000원, 대파 7,000원에 팔고 있는데 도저히 살 엄두가 안 난다", "엄마가 집에서 육개장을 끓여줬는데 파가 없어요" 등의 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파테크'하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파테크는 파+재테크의 합성어로 집에서 파를 키워 먹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1년 사이 대파 가격이 3배 이상 껑충 뛰자 지금이라도 집에서 파 키우기에 나선 셈입니다.
 
겁나는 수준의 체감물가’가 통계로 증명됐습니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대비 1.1% 뛰었다. 지난해 2월(1.1%) 이후 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입니다.
 
2월 물가 상승이 유독 피부에 와닿는 것은 농축수산물 등 일상에서 자주 구입하는 품목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2월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동월대비 16.2% 상승해 전체 물가를 1.26%포인트 끌어올렸습니다. 2011년 2월 17.1% 오른 이후 10년 만에 최대 상승폭입니다. 한파에 따른 작황 부진,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설 명절로 인한 수요 증가가 겹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세부 품목별로 보면 대파 가격이 1년 전보다 227.5%나 껑충 뛰었습니다. 1994년 5월(291.4%) 이후 약 2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달걀 가격도 전년보다 41.7% 올랐습니다. 2017년 8월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을 보이며 '금(金) 달걀'의 물가를 실감케 했습니다.
 
저녁 식탁에 자주 등장하는 쌀(12.9%), 고춧가루(35.0%), 양파(71.2%), 마늘(39.6%), 시금치(41.3%) 등의 가격 상승률도 만만치 않습니다. 감자(31.4%), 고구마(49.4%), 미나리(17.4%), 호박(15.9%), 버섯(15.7%), 사과(55.2%) 등의 가격도 모두 올랐습니다. 국산 쇠고기(11.2%), 돼지고기(18.0%), 닭고기(8.7%) 등 축산물 물가는 2011년 6월(16.1%) 이후 최대 상승 폭인 14.4%를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긴 장마와 잦은 태풍 및 겨울철 한파에 따른 채소류 작황 부진에 공급 부족 사태가 지속되면서 가격이 상승한 탓입니다. 여기에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에 따라 달걀 가격 상승, 설 명절 등 중첩 요인으로 장바구니 물가 오름폭이 크게 확대됐습니다.
 
실제 가격은 물가 상승을 더욱 체감하게 합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가격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5일 소매가(상품) 기준 대파 가격은 1㎏에 7,556원으로 조사됐습니다. 최고 가격은 1만830원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평년(3,198원)보다 2배 이상 치솟은 가격입니다. 지난해 대파 가격인 2,187원과 비교하면 3.5배나 가격이 뛰었습니다.
 
달걀 가격은 30개 기준으로 7,672원(특란 중품 기준)으로 조사됐습니다. 최고 가격은 8,750원까지 치솟았습니다. 평년 가격 5,177원보다 2,500원이나 올랐습니다. 평균 g당 1,702원 하던 국산 삼겹살은 1,988원으로 상승했습니다. 1등급 한우 등심은 100g당 8,163원에서 1만207원으로 올랐습니다.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재정 당국은 단기간 내 급격한 물가 급등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보면서도 글로벌 유동성 증가 및 높아진 인플레이션 기대,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 등 인플레이션 위험 요인이 도처에 상존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해 11월 KDI가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전제했던 수준보다는 유가 등이 더 올랐다”면서 “앞으로도 소비자물가가 높게 나올 수는 있지만 장기간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일종의 정상화 과정을 밟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서민 생활과 밀접한 농축산물 가격의 조기 안정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최근 높은 가격이 지속되는 계란, 채소류, 쌀 등을 중심으로 수입 확대, 생육점검 강화, 정부 비축·방출 확대 등 맞춤형 수급 안정 대책을 차질없이 집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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