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인 15일 오전 경남 남해군 망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남해바다에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정재원 기자] 대선을 앞두고 진실과 거짓, 그리고 위선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야당주자인 윤석열의 ‘고발사주 의혹’과 여당주자인 이재명 지사의 ‘성남 대장동 의혹’ 등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78대22의 법칙’이 있다. 유태인들이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로 믿고 있는 법칙이라고 한다. 또 인간이 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78이라는 것이다.
 
바다와 육지의 면적비가 78대 22이다. 공기 속에 질소와 기타의 구성 비율도 78대 22가 된다. 인체도 수분과 수분을 제외한 기타의 비율은 78대 22이다. 가로.세로 10cm 정사각형 속에 내접된 원을 그리면 정사각형 면적과 그 내접원의 면적 비율도 78대 22가 된다. 이 외에도 우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피의 성분도 수분과 수분을 제외한 기타의 비율이 78 : 22가 된다고 한다. 
 
각국 중앙은행을 지배하고 있는 유태인들은 78대 22의 비율은 창조 및 자연의 법칙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상술에도 적용하며, 성공확률이 78%, 실패확률이 22%이면 최상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투자나 거래에서 성공 확률이 78% 정도라고 생각 되면 과감히 투자하고 거래하며 증권에서도 7~8부 능선에서 매도 하고 2~3부 능선에서 매수한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고 하는증권투자격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78:22 법칙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어떤 물건의 원가가 78원이라면 거기에 이윤을 22원 붙여 100원에 파는 것이다. 그 이상이나, 그 이하의 이윤 추구는 결국 적자가 된다. 이 비율을 어겨 이윤을 남기게 되면 '바가지 씌운다'라는 소리도 듣기도 하고 법적으론 폭리행위로 감옥갈 수도 있다. 
 
위의 78대 22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100%를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22%정도는 부족한 것이 최상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얘기이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항상 어느 정도(22%)는 여유와 관용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화가들이 여백의 미학을 중시 여겼던 것도 배경과의 적절한 조화 없이는 풍경의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계산해 보지는 않았어도 그 여백은 22%는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보인다. 
 
Y-shirts를 입을 때도 단추를 모두 잠근 상태보다는 그래도 단추 한두 개는 풀어 놓고 입는 것이 더 멋있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단추 5개 중에서 1개는 풀어 놓고 입으시라는 얘기다. 비록 가슴에 난 털이 보일지라도. 
 
이렇게 어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공격과 수비를 겸하는 방법은 손무의 <손자병법>을 연상시킨다. 기본적으로는 역리에서 음과 양이 조화롭게 작용하는 것과 같다. 
 
78:22 법칙을 꼭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와 비슷한 법칙을 응용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 가령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이었던 괴벨스 같은 경우 80%의 진실과 20%의 거짓을 섞으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는 프로파간다전의 기본 전술이다. 
 
음모론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80%가 진실이더라도, 20%의 거짓 때문에 100%의 거짓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 잘 선별해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대선이 다가오면 각종 루머가 판을 치는데 내년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음모론이 극에 달할 듯해서 걱정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신문방송이 난리를 피우니 말이다. 
 
78대 22의 법칙은 일과 휴식에도 적용된다. 적당히 일을 해야 오히려 더 일의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적으로도 '수확 체감의 법칙(가변투입요소를 늘려나가면 처음에는 한계생산이 늘어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줄어드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 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바흠의 이야기"에서도 만약 바흠이 주어진 시간과 자신의 체력을 적절히 사용하여 욕심을 부렸다면 (22%의 여유를 두었더라면) 아마 그는 최상의 선택을 하였을 지도 모른다. 
 
유태인들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고 있는 78대 22의 법칙도 엄밀히 따져 보면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황금률 즉 피보나치 수열과 관련이 있다. 즉 78의 78%를 백분율로 나타내면 60.84가 된다. 공식화하면 A^2 = B  ---> A = 10루트B. 이 B의 값에 피보나치 비율 0.6180339를 100배한 61.80339를 대입하면 A = 78.6151 약 78이 나온다. 
 
이처럼 유태인이 믿고 있는 78대 22의 법칙이나 자연의 상태를 나타내는 피보나치 수열간에는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아마도 그 공통점은 자연상태인 것이다. 자연상태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생명현상인 우리의 죽음도 자연상태이며 가장 아름다운 상태이리라. 
 
78대 22의 법칙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응용할 수가 있다. 일과 공부도 적당히 놀면서 하는 사람들(78%는 일과 공부를 하면서도 22%는 논다든지 휴식같은 것이 필요함)이 오히려 악착같이 출세와 돈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보다 삶의 질이 더 낫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 모든 게 78:22 법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의 "78대 22의 법칙"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기억해 두었다가 본인이 실천을 하고 자녀나 손주들에게도 교육해 준다면 삶의 질이 높아지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78프로 일도 안한 사람이 22프로를 휴식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즉,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놀 권리가 있고 열심히 일한 농부가 새참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똑같이 재난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은 78대 22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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