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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人】 '국민가수' 박창근, '전설' 김광석 바람으로 거듭날까

기사승인 2021.12.25  16: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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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화면 캡쳐
[김승혜 기자] 지난 23일 밤 10시 방송된 TV CHOSUN 글로벌 K-POP 오디션 '내일은 국민가수'(이하 '국민가수') 최종회가 최고 시청률 19.9%, 전국 시청률 18.8%(닐슨코리아 유료방송가구 기준)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다시 경신하며 무려 12주 연속 지상파와 비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주간 예능을 올킬하는 초유의 기록을 썼다. 
 
사실 '국민가수'는 TV조선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시리즈로 폭발적인 화제성을 터뜨린 제작진들이 다시 뭉쳐 방송 전부터 화제가 됐다. 
 
25일 연예계에 따르면 제1대 국민가수가 탄생하기까지 '국민가수'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당초 '국민가수'는 지난 1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30대 미만' 참가자를 모집했다. 엄격한 커트라인에 대중의 반발은 거세졌고, TV조선은 3월 "전 연령대로 지원 자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나이 제한이 사라지자 다양한 연령대의 지원자들이 참가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7살 김유하부터 23년 간 무명가수로 음지에서 활동한 최연장자 50세 박창근까지, 참가자들의 다양한 나잇대 만큼이나 국민가수를 즐기는 팬 층도 매우 두터웠다. 갑작스런 부상을 당해 꿈을 접은 역도선수, 무대 공포증에 시달려 가수의 길을 포기해야 했던 참가자, 가수의 꿈을 꿨지만 눈앞의 생계가 막막해 닭갈비집에서 숯불을 피우던 아르바이트생까지, 각자의 사연도 직업도 다양했던 이들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용감하게 발을 뗀 찬란한 도전기가 매회 막강한 팬덤을 만들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TV 앞으로 모여 앉게 하는 폭발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50세의 포크 가수 박창근이 '제 1대 국민가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도 나이 제한이 사라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3년 간 무명 생활을 겪은 박창근은 우승 소감에서 "저희에게 국민 여러분을 만나게 해 준 제작진과 마스터들, 김성주 님께 감사하다"고 운을 뗐다. 또 이번 참가자 중 최연장자인 그는 "노래하겠다는 자존심 하나로 늘 주변을 힘들게 했는데, 엄마는 힘들지 않아 보였다. 늘 나를 응원해 줬다"고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어 "많은 국민들이 보는 방송에서 얼굴 한번 보여주는 생일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온 것 같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위로 해달라는 (국민의) 말씀 같다. 죽을 때까지 노래해서 올려드리겠다"고 했다. 
 
박창근은 올해 50세로 경북 영주 출생으로 대구에서 성장하고 정규 음반 4장/기획 음반 4장을 발표했다.
 
   
 
싱어송라이터인 박창근은 1999년도에 발표한 그의 1집 'Anti-Mythos'는 함께 살아가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공존'을 이야기하는 음악을 시작으로 그의 정규 4집 '바람의 기억'까지 시대를 향한 묵직한 고민의 메시지를 노래로 표현한다는 소리를 들은 가수였다.
 
박창근이 대중적으로 조금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2년 11월에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의 소극장에서 시작한 김광석 창작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인공을 맡으면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고 김광석이 남긴 주옥같은 노래들을 소재로 한 최초의 뮤지컬로, 원곡이 가진 정서와 감동을 최대한 전달하기 위해 거의 편곡을 하지 않고 원곡 그대로의 느낌을 공연에 담아낸 뮤지컬이다.
 
박창근도 그 당시 재야에서 알아주는 김광석 모창 능력자였기에 JTBC 제작진에서도 섭외를 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박창근이 고사를 했다고 한다.
 
박창근은 매년 5월이 되면 광주를 찾아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억하고 정신을 이어가는 '5월의 노래'에 출연한다고 한다. '5월의 노래'는 전국의 음악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끌어 온 '거리음악제'로 온라인으로 진행된 올해 5월에도 광주를 찾아 어김없이 노래를 불렀다.
 
이같은 이력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집회 등 각종 진보 진영 집회에 참가한 그의 과거 이력이 알려지면서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했다. TV조선이 주최하는 경연에 이런 이력을 지닌 가수가 참가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저를 민중 가수라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대학생(대구대) 때, 저는 선배들과도 많이 다퉜습니다. 의식화된 민중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에 고픈 사람들도 다 민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전 사실 그동안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어요. 집회 현장에서 부르는 투쟁 가요를 싫어했거든요.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건 좋지만 싸워서 뒤엎고 죽이자, 이런 건 제가 용납이 안 됐어요. 굳이 말하자면 저는 민중이 아니라 대중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다.
 
 한때 대구에서 열린 ‘김광석 노래 다시 부르기 대회’ 심사위원을 맡기도 한 박창근은 오디션 곡으로 <김광석의 그날들>이라는 곡을 불렀다. 그가 부른 첫 소절부터 심사위원들이 놀라워하며 하트를 누르기 시작하며 최단기간 올 하트를 받은 참가자가 되었다.
 
이후 심사위원들은 "10~20년만 일찍 태어나셨다면 대중문화의 역사가 새로 쓰였을 것이다, 모든 걸 쏟아낸 노래이다"라고 극찬하며 박창근 노래 실력에 대해 끊임없는 호평을 내놓았다. 
 
한 블러거는 "박창근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혼신을 다하는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관객에게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위로를 받으면서 노래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과 위로를 통해 에너지를 만드는 감동적인 가수"라고 했다.
 
 가수 김광석도 자신의 소신도 지키고 그만의 음악성과 대중적인 인기를 함께 얻었고 영원히 우리의 가슴에 존재하는 가수가 되었듯이 이번 박창근의 우승 역시 그러한 대중의 바람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승혜 기자 shkim@naver.com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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