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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명현의 세상생각] 달걀이 사랑의 가교 구실을 해 주던 시절

기사승인 2022.01.19  09: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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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포럼 대표/지에스리테일 고문
저마다 인생의 도화지가 있다. 그리고 그 도화지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살았고 또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좀 들었다' 말하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나름의 애잔한 추억의 그림이 있다.
 
오늘은 달걀이 단지 반찬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가교 구실을 해 주던 시절, 어떤 이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리운 그 시절(時節)
아버지가 읍내에 있는 작은 中學校에서 교편(敎鞭)을 잡고 계실 때였다.
집을 지키시느라 가끔은 심심해하시는 어머니에게 닭을 한번 키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버지께서 제안(提案)하셨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닭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얼굴에는 화색(和色)이 돌았다.
어머니는 신작로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마다 닭장에 들어가 달걀을 빼 들고 나오는 일에 더 즐거움을 느끼시는 듯했다.
처음에 세 마리였던 닭은 다섯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까지 늘었다.
글쎄, 닭 때문에 우리 家族이 누리는 幸福의 양이 늘어간 것을 어떻게 表現해야 할지!
우리는 어느 아이들보다 풍족(豐足)하게 달걀 飮食을 먹을 수 있었고, 어머니 대신 닭장 안에 들어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알을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 안고 나오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은 달걀을 들고 市場에 나가 팔기도 했다.
그리고 그 돈은 우리의 옷과 책가방, 學用品 등을 사는 데 보태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우리 삼 兄弟를 모아놓고 중대한 宣言을 했다.
내 卒業式이 끝날 때까지는 달걀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밑의 동생이 울상이 된 얼굴로 이유를 물었고, 어머니는 "네 형의 卒業式 날 새 옷 한 벌 사주려고 그런다."라고 말했다.
卒業式은 한 달가량 남아 있었고, 그 卒業式에서 나는 전교생 대표로 우등상(優等賞)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네 형은 새 옷이 없잖니, 그날마저 허술한 옷을 입게 둘 수는 없잖아."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이해 시켰지만, 그 설명을 듣는 두 동생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섭섭하게 하면서까지 새 옷을 입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엄마가 옷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면 차라리 나는 卒業할 때 어떤 상(賞)도 받지 않겠다고 하겠어요." 하며 슬픈 빛으로 막냇동생이 말했다.
"아니야! 엄마는 큰 형이 큰 상을 받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상을 받으러 아들과 함께 연단(演壇)에 올라갈 그 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는 걸."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불렀다.
"달걀이 매일 두 개씩 없어지는구나."
스무 마리의 닭 중에서 알을 낳는 닭은 열다섯 마리인데, 달걀은 매일 열세 개씩밖에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일주일 내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너희가 學校에 가고 나면 주로 닭장 문 근처에서만 왔다 갔다 하거든."
어머니의 말대로 닭장은 마당 한 귀퉁이에 있었고, 大門에서도 한참이나 안쪽으로 들어와야 하므로 쉽게 도둑맞을 염려도 없었다.
설사 도둑이 들었다 해도 왜 하필이면 두 개만 들고 간단 말인가?
아버지에게까지 알려져 해괴한 그 일의 문제를 풀어 보고자 했지만 해결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밤마다 대문을 철저히 잠그고 대문 근처에 개를 묶어 두는 方法까지 동원했지만, 도둑을 잡지는 못했다.
그 일이 계속되는 가운데 卒業式이 다가왔다.
약속대로 어머니는 전날 읍내에 나가 내 옷을 사서 왔다.
붉은색 체크무늬 남방과 감색 재킷이었다.
"바지는 입던 것을 그냥 입어야겠구나. 달걀이 없어지지만 않았다면 바지도 하나 살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새 옷을 내놓으면서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여보, 난 정말 너무 기뻐서 연단(演壇)에 올라가 울 것만 같아요."
졸업식(卒業式) 날이 되어 아끼고 아끼던 한복(韓服)을 입고 나선 어머니. 그때 우리는 모두 늑장을 부리는 막냇동생을 기다리느라 한참이나 마당에 서 있었다.
막냇동생은 아버지가 어서 나오라고 두 번이나 말한 다음에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형들 준비할 때 뭘 했니? 어서들 가자."
아버지가 간단히 주의시키고 나서 우리 모두 막 몇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제일 뒤에 처져 있던 막냇동생이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우리 모두 뒤돌아보았을 때, 막냇동생의 손에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소중히 들려져 있었다.
그제야 나는 韓服 치마 밑으로 코를 삐죽 내밀고 있는 어머니의 낡은 고무신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오래 신었던 것인지 색이 바래 흰색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엄마한테 주려고 샀어요. 하지만, 너무 야단치지는 마세요.
달걀 두 개는 어디까지나 제 몫이었으니까요."
그날 어머니는 연단(演壇)에 서기도 전에 눈물을 펑펑 쏟아 몇 년 만에 한 화장(化粧)을 다시 해야 했다.
나의 손을 잡고 연단(演壇)에 올라가면서도 어머니의 눈길은 막내가 내놓은 하얀 고무신 코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겐 달걀이 단지 반찬(飯饌)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가교 구실을 해 주던 시절(時節)이었다.

나명현 mheona@hanmail.net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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